- 예측을 뒤엎는 서사 반전과 이야기 구성
- 초능력 액션의 신선함과 감각적 연출
- 정체성의 혼란과 감정선의 이중성

처음 <마녀>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나는 솔직히 다소 전형적인 장르물을 예상했다. 초능력을 가진 소녀, 그녀를 쫓는 조직, 그리고 피의 복수. 익숙하게 반복되어온 플롯 구조 속에 이 영화도 또 하나의 유사작이겠지 하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관람이 시작되고 30분이 지나자, 나는 그 생각을 철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녀>는 단순히 초능력자가 등장하는 SF물이 아니었고, 예상과는 전혀 다른 내러티브의 흐름을 보여주며 관객의 사고를 능동적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건 영화의 흐름 자체다. 처음에는 한적한 시골에서 양부모와 살아가는 평범한 소녀 ‘자윤’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점점 그녀를 둘러싼 기이한 사건들이 발생하고, 시청자는 그녀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눈치채게 된다. 그런데도 영화는 자윤의 순박한 모습과 학교생활, 가족 간의 따뜻한 분위기를 과감하게 길게 보여주며, 우리가 ‘이건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계속 간질인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그 기다림의 미학이다. 보통 영화는 시작 20분 이내에 갈등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본론으로 진입하지만, <마녀>는 거의 영화 중반이 지나기 전까지 ‘정적’을 무기로 사용한다. 그리고 그 정적 속에 감춰진 복선들은 후반부에 폭발적인 반전을 만들어낸다. 나는 이런 방식이 오히려 관객을 더 몰입하게 만든다고 느꼈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 다음은 뭐지?”라는 의문을 품고 능동적으로 예측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점은 캐릭터 설정이다. 김다미가 연기한 자윤은 정말 흥미로운 인물이다. 처음엔 순박하고 약해 보이지만, 점차 그녀의 이면이 드러나면서 관객의 시선을 완전히 뒤흔든다. 특히 그녀가 특정 장면에서 감정을 억제하고 무표정으로 상황을 정리해나갈 때, 그 차가운 눈빛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긴장감을 자아낸다. 나는 그 장면에서 단순히 ‘강한 인물’이 아닌, '통제된 괴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영화는 스릴러, 액션, 미스터리, 심지어 성장영화의 요소까지 골고루 갖추고 있다. 그러면서도 중심에는 끊임없는 긴장과 반전이 깔려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이 영화가 전형적인 헐리우드식 히어로물과 다르게, 인간의 감정과 상처를 섬세하게 묘사하며 캐릭터의 깊이를 더했다는 점이다.
이번 글에서는 <마녀>를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보려 한다. 첫째는 예측을 뒤엎는 서사 반전과 이야기 구성, 둘째는 초능력 액션이 보여준 시각적 쾌감, 셋째는 자윤이라는 인물을 통해 드러난 정체성 혼란과 감정선이다. 이 세 가지는 영화가 단순히 ‘화끈하다’는 평가를 넘어서, ‘기억에 남는다’는 감정을 만들어낸 이유라 생각한다.

1. 예측을 뒤엎는 서사 반전과 이야기 구성
<마녀>가 가장 뛰어난 점 중 하나는 단연 ‘서사 전환’의 방식이다. 영화 초반은 마치 따뜻한 성장 드라마처럼 시작된다. 자윤은 양부모의 보살핌 속에 시골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소녀이고, 그녀의 고민은 학교 경연대회나 가정의 경제 사정 정도로 보인다. 하지만 이 평화로움은 전반부가 끝나는 시점에 완전히 뒤집힌다.
영화는 자윤의 일상 속에 점점 이상한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변화를 암시한다. 특히 우연처럼 나타난 청년 ‘귀공자’(최우식 분)는 처음엔 단순한 괴짜로 보이지만, 점차 그가 가진 위험성과 잔인함이 드러난다. 자윤을 둘러싼 퍼즐 조각들이 하나둘 맞춰지기 시작하면서, 관객은 그녀의 정체에 대해 점점 확신하게 된다. 하지만 결정적인 전환점은 자윤 스스로가 그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혔을 때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전율을 느꼈다.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은 ‘주인공이 자신도 모르는 존재’로 보이게 만든 뒤, 알고 보니 모든 걸 다 알고 있었다는 반전 구조다. 자윤은 연기하고 있었고, 그녀를 관찰하던 적들마저 그녀의 계획 안에 있었다. 이 반전은 단순히 '놀라움'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이야기를 한 번 더 곱씹게 만든다.
나는 이런 구조가 단순한 트릭이 아니라, 캐릭터에 대한 신뢰와 배반을 동시에 안겨주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탁월하다고 느꼈다. 관객은 자윤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그녀를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고 믿는다. 하지만 후반부에 그녀가 피에 젖은 채 차갑게 상황을 통제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다시 그녀를 낯설게 바라보게 된다.
<마녀>는 바로 그 '시점의 뒤바뀜'을 통해 한 인물을 다층적으로 경험하게 만든다. 나는 이 영화의 내러티브가 그 자체로 감정의 회로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스토리텔링이 감정선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스토리텔링을 반전시키는 방식이랄까. 이 구조는 결코 쉽게 따라할 수 없는 감정과 구조의 완벽한 결합이었다.

2. 초능력 액션의 신선함과 감각적 연출
<마녀>는 초능력을 소재로 한 액션을 본격적으로 전면에 내세운다. 그러나 그 방식이 기존 한국 영화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세련되고, 동시에 독특하다. 나는 특히 이 영화가 보여준 초능력 액션의 리듬감과 편집 방식에 감탄했다.
초능력 장면은 보통 과장되거나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방향으로 연출되기 쉬운데, <마녀>는 이를 시각적으로 압도하기보다는 리얼리즘에 살짝 발을 얹은 느낌으로 표현한다. 자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때, 그 동작은 차갑고 빠르며 정교하다. 마치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처럼 필요한 최소한의 동작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이 점에서 나는 이 영화가 단순한 ‘액션 쾌감’이 아니라 ‘기술과 감정이 맞물린 액션’을 추구했다고 느꼈다.
특히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펼쳐지는 내부 회전 복도에서의 혈투는 그 자체로 예술이다. 속도감과 타격감이 모두 살아 있으면서도, 자윤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다. 그녀는 마치 프로그래밍된 살인 병기처럼 움직인다. 그 차가움이 오히려 장면에 강력한 긴장감을 부여한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점은, 이 영화가 액션씬을 통해 캐릭터의 심리와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자윤이 처음 능력을 사용할 때와, 기억을 완전히 회복한 후 사용하는 방식은 분명히 다르다. 후자는 훨씬 더 빠르고 강하며, 감정도 거의 없다. 나는 이 차이를 통해 자윤의 내면이 점점 냉정한 인물로 바뀌고 있음을 느꼈다.
액션이 단순한 볼거리로 끝나지 않고 캐릭터의 변화와 감정까지 전달하는 도구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마녀>는 한국 액션 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김다미의 무표정한 얼굴과 폭발적인 액션의 조합은, 마치 예전의 '킬 빌'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훨씬 더 정제되고 한국적인 감성을 머금고 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이런 스타일의 액션이 한국에서도 가능하구나”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후속작에서 더 확장될 수 있다고 기대하게 만든다.

3. 정체성의 혼란과 감정선의 이중성
<마녀>는 자윤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정체성과 감정에 대한 복잡한 주제가 숨어 있다. 자윤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살아왔고, 그 과정에서 인간적인 감정을 쌓아왔다. 하지만 그녀가 그동안의 기억을 되찾는 순간, 그녀의 감정선은 이중화된다. 나는 이 지점이 영화의 가장 심오한 지점이라고 느꼈다.
자윤은 인간적인 감정—가족애, 우정, 평화로운 일상—을 경험했지만, 사실은 태생적으로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존재였다. 이 아이러니가 영화 전체를 감싸고 있으며,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끊임없이 시험받는다.
그녀는 따뜻한 감정에 머물 수도 있었지만, 결국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들과 마주하며 피의 본능을 드러낸다. 나는 이 결정을 단순히 폭력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생존의 방식이며, 동시에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는 과정이다.
그녀가 가장 친한 친구에게조차 비밀을 털어놓지 않는 장면, 마지막에 웃으며 복수를 완수하는 장면 등은 모두 자윤의 감정이 이제는 이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거의 자윤은 ‘사람’이었다면, 현재의 자윤은 ‘무언가 더 복잡한 존재’가 된 것이다. 나는 이 변화가 매우 매혹적이면서도 슬펐다.
인간과 괴물의 경계, 진짜 나와 가짜 나 사이의 고민은 단지 판타지 장르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나는 자윤이라는 캐릭터가 현대인들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역할과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고,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진짜 나를 감추는 삶. 그게 어쩌면 우리 모두가 ‘마녀’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마녀>는 단순한 초능력자가 아닌, 감정과 정체성의 층위가 교차하는 캐릭터를 통해 깊은 여운을 남긴다. 나는 이 점에서 <마녀>가 그 어떤 스릴러보다도 인간적인 영화라고 느꼈다.

<마녀>는 단순한 초능력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정체성을 잃어버린 존재가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자, 평범함과 비범함의 경계에 선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그린 드라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내가 만약 자윤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여러 번 하게 됐다.
감정적으로는 가족과 친구가 있는 평범한 삶을 선택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는 피할 수 없는 존재들과 마주해야 한다. 이 딜레마 속에서 자윤은 결국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재정의한다. 나는 그 과정이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존재의 회복이라고 느꼈다.
무엇보다 <마녀>는 한국 영화에서 보기 힘든 장르적 시도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구조적인 반전, 스타일리시한 액션, 감정선의 복잡함까지 모두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관을 완성했다. 특히 김다미의 존재감은 놀라웠다. 신인이 이렇게까지 한 작품을 장악할 수 있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감히 말하건대, <마녀>는 10년 후에도 회자될 장르 영화 중 하나일 것이다. 그만큼 영화가 가진 메시지와 스타일, 그리고 감정의 밀도는 깊고 정교했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도 한동안 여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건, 이 영화가 ‘시작’이라는 점이다. 후속편이 있다는 것은, 이 세계관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더 확장될 수 있다는 의미다. 나는 앞으로 이 시리즈가 어떤 방향으로 성장할지 매우 기대된다.
<마녀>는 단지 특수한 능력을 가진 소녀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보통이 아닌 존재’들이 세상과 마주하며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은유이자, 우리 안에 숨겨진 또 다른 자아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영화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을 "강렬했다"라고 표현하기보다는, “깊게 스며들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 여운은 지금도 여전히 내 안에서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