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감각을 흔든 세 사람, 예술을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다
예술을 좋아한다는 말을 입에 올리기 시작한 건 꽤 오래 전부터였지만, 실제로 ‘그림을 본다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처음엔 예쁘니까, 유명하니까, 혹은 SNS에서 자주 보니까 그 그림들을 좋아하게 된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뭔가가 달라졌다. 한동안 혼란스럽던 삶의 감정이 클림트의 금빛 화면에서 위로받고, 몬드리안의 절제된 선들 속에서 정리되고, 칸딘스키의 추상 속에서 다시 흔들릴 때, 나는 비로소 ‘내가 진짜로 그림을 보고 있구나’ 싶었다.
그 감정은 꽤나 선명하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먼저 반응했던 순간들. 나도 모르게 한참을 멈춰서게 되고, 이해는 안 되지만 이상하게도 편안해지는 그 감정. 근대미술의 거장들—클림트, 몬드리안, 칸딘스키—는 그런 나를 가장 깊은 지점에서 흔들고, 어루만지고, 깨우쳤던 이름들이다.
이들은 모두 고전과 결별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시각 언어를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이들을 두고 감정이 지나치다, 혹은 형식에 치우쳤다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회화는 기존의 미술사적 기준을 해체하면서 동시에 ‘나 자신을 보는 시선’을 열어주는 작업이었다고 믿는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감동받았기 때문이다. 그 감동을 제대로 전달하고 싶다. 이건 설명이 아니라 경험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아직 그 그림들을 직접 보지 못했다면, 혹은 본 적 있지만 그저 지나쳐버렸다면, 이 세 작가를 다시 만나보기를 진심으로 권하고 싶다. 당신의 감각이, 그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바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1. 클림트: 황금빛 표면 아래 숨겨진 욕망과 불안
구스타프 클림트를 처음 본 건 교과서 속 <키스>였다. 황금빛이 화려하고 아름다웠지만, 당시엔 그저 “예쁜 그림”으로만 기억됐다. 그런데 몇 년 전, 실제로 빈 벨베데레 궁에서 <키스> 원화를 보았을 때, 나는 그 그림 앞에서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그것은 단지 아름다운 한 장면이 아니었다. 보는 내내 불안하고, 동시에 감정이 따뜻해지는 이중적인 느낌이 들었다.
클림트의 그림은 외관상으로는 장식적이지만, 그 안에는 욕망과 불안, 생명과 죽음에 대한 복잡한 감정들이 교차하고 있다. 황금은 신성함의 상징이자 덧없음의 상징이고, 여성은 아름다움이면서 동시에 위협이기도 하다. 그의 화풍은 단순한 미적 기호가 아니라 철학이자 고백처럼 느껴졌다.
<생명과 죽음>이라는 작품도 인상 깊었다. 생명의 군집과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이 하나의 화면에 공존한다. 화려한 색채와 반복적인 문양 속에서도 그 그림은 인간 존재의 이중성과 무상을 말한다. 나는 이 그림을 보며 ‘삶이란 이렇게 모순적인 것이구나’라는 것을 되새겼다.
클림트는 나에게 예술이란 ‘꾸밈’이 아니라, ‘감정의 패턴’이라는 걸 알려준 사람이다. 이해하지 않아도 좋고, 그냥 그 감정 속에 빠지면 된다는 것을. 그의 그림은 나를 가장 진솔한 감정으로 이끌었고, 지금도 내 감각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2. 몬드리안: 혼란을 정리해주는 선과 색의 질서
피트 몬드리안의 그림은 처음엔 너무 차가워 보였다. 직선과 직사각형, 검은 선과 삼원색. 감정이 없어 보였고, 너무 수학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삶이 복잡해지고 감정이 정리되지 않을 때, 나는 이상하게도 몬드리안의 그림을 꺼내 보게 됐다. 그 안에서 위로를 받는 나를 발견하게 됐을 땐, 조금 놀랐다.
몬드리안은 단순화를 통해 ‘보편적인 미’를 추구한 화가다. 그는 자연을 완전히 배제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자연 속에서 질서를 추출하려 했다. 나는 그의 그림을 볼 때마다 ‘나의 생각과 감정도 이렇게 정리될 수 있을까’ 하고 상상하곤 한다.
특히 <빨강과 파랑의 구성> 같은 작품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정돈된다. 마치 시각적인 정리 노트 같다. 삶이 혼란스러울 때, 그 안에서 단순함을 찾아내는 그의 태도는 예술이 어떻게 치유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몬드리안을 통해 ‘감정은 색이 아니라 구조로도 표현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 혹은 너무 복잡해서 설명하기 어려운 생각들. 그것들을 직선과 구획이라는 형식 속에 넣어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의 내면이 조금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차가운 미술이 아니라, 오히려 조용히 마음을 정리해주는 가장 따뜻한 언어.

3. 칸딘스키: 보이지 않는 감정을 색으로 울리다
바실리 칸딘스키는 내가 추상미술을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인물이다. 그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땐 ‘이게 뭐지?’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데 그 그림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먼저 반응했다. 설명되지 않지만 분명한 울림. 그게 칸딘스키였다.
그는 그림이 음악처럼 울려야 한다고 믿었다. 실제로 그는 회화와 음악을 넘나드는 감각의 예술가였다. <구성 8> 같은 작품은 색과 형태가 하나의 교향곡처럼 배치되어 있다. 나는 그 그림을 보면, 마치 무언가에 맞은 듯한 느낌이 든다. 감정이 뚝 하고 떨어지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 피어오른다.
그는 말한다. “진정한 예술은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를 그림으로 옮기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그의 그림은 그 말을 정확히 실현한다. 이해보다는 감각, 구조보다는 감정. 나는 요즘처럼 머릿속이 복잡한 시대에 이런 예술이야말로 더욱 필요하다고 느낀다.
칸딘스키는 나에게 ‘감정의 깊이’를 가르쳐준 화가다. 감정은 언제나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며, 그 방식은 꼭 구체적일 필요가 없다는 것. 추상적인 형상 속에서 내 감정을 발견하는 경험. 그건 내가 예술을 통해 나 자신과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나의 감각을 확장시킨 예술, 세 사람에게 배운 것들
예술을 본다는 건 무엇일까. 예전에는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림이 상징하는 의미, 작가의 의도, 역사적 맥락.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느낀다. 이제는 ‘느끼는 것’에 더 가깝다. 그냥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어떤 기억이 떠올랐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클림트, 몬드리안, 칸딘스키. 이 세 사람의 그림은 모두 다르다. 하나는 화려하고 감각적이고, 하나는 차갑고 구조적이며, 또 하나는 완전히 추상적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셋 다 나에게 ‘나 자신을 바라보는 감각’을 키워줬다. 그건 그들의 그림이 단지 예쁘거나 기교가 뛰어나서가 아니다. 그들의 그림은 나에게 질문을 던졌고, 감정을 흔들었고, 생각을 멈추게 했다.
요즘처럼 불확실한 시대를 살다 보면, 우리는 자주 흔들리고, 혼란스러워지고, 마음이 어지러워진다. 그럴 때 나는 이 세 사람의 그림을 꺼내 본다. 클림트의 황금빛 안에서 감정을 인정받고, 몬드리안의 선에서 마음을 정리하고, 칸딘스키의 색채 속에서 새로운 감각을 얻는다. 예술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나를 다시 나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
이 글을 쓰며 다시 한 번 느낀다. 예술은 이성과 감성, 혼란과 질서, 감각과 사유가 만나는 지점에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접점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준 사람들이 바로 이 세 화가였다. 당신도 이 그림들 앞에서,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어떤 감각을 만난다면, 그건 당신 안에 이미 예술이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근대미술의 거장들—클림트, 몬드리안, 칸딘스키—는 나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들의 작품을 통해 나는 예술이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이 아니라, 감정과 사유의 깊이를 탐구하는 중요한 수단임을 깨달았다. 앞으로도 이들의 작품을 통해 더 많은 감정을 느끼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
이렇게 근대미술의 거장들을 통해 느낀 감정과 사유는 나에게 큰 의미가 있다. 예술을 통해 나 자신을 발견하고, 더 나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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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자료를 참고 했어요.
[1] 네이버 블로그 - [미술사조] 서양미술사의 흐름과 이해 (추천) -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uniqkirin/221312782005)
[2] 네이버 블로그 - 근대 서양 미술의 변화 <철학이 담겨있는 그림들> -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acekyo82/130169886711)
[3] 브런치스토리 - 서양 근대미술 [예술적 통찰을 위한 창] (https://brunch.co.kr/@bigyomi/32)
[4] 티스토리 - 7(1) - 19세기 근대미술의 이해 : 배경과 특징 - 쉼 , (https://story14.tistory.com/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