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이 바꾼 건 얼굴뿐 — 변한 우리, 변하지 않은 마음
- 추억은 되돌릴 수 없지만 — 과거를 안고 오늘을 사는 법
- 웃음과 눈물 사이 — 감정을 밀도 있게 엮은 연출의 힘

“우리 다시 만나면, 웃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
나는 <써니>를 처음 본 날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별다른 기대 없이 플레이한 영화였고, 솔직히 첫 장면만 보고도 ‘평범하겠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났을 땐, 내 눈엔 눈물이 맺혀 있었고, 머릿속은 오래된 친구들로 가득했다. 왜 그랬을까? 나는 이 영화가 ‘추억’이라는 단어를 단순히 감정적으로 소비하는 영화가 아니라, 그 추억을 통해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가진 영화라고 느꼈다.
<써니>는 두 개의 시간이 교차하는 구조를 가진 영화다. 학창시절의 ‘써니’ 멤버들과 중년이 된 그들의 모습이 번갈아 보여진다. 이 구조는 단순한 플래시백이 아니다. 과거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기보다, ‘현재’를 더 뚜렷하게 이해하기 위한 장치다. 젊고 생기 넘쳤던 그 시절과 비교해보아야 지금의 모습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마음은 여전히 그대로인지 드러난다.
나는 이 영화의 연출 방식이 그래서 좋았다. 한 사람의 인생을 전부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인물 하나하나에 장황한 설명을 붙이는 것도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모두가 ‘내 친구 같고 내 이야기 같다’는 느낌을 준다. 대사 한 줄, 눈빛 하나에 담긴 감정이 그렇게까지 진하게 전해지는 영화는 흔치 않다.
더 인상 깊었던 건, ‘써니’라는 팀이 결국 각자 뿔뿔이 흩어졌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늘 어떤 관계가 영원하길 바라지만, 현실은 다르다. 오랜만에 재회한 친구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고, 그 공백은 간단한 웃음 한 번으로 메워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말한다. “그래도 괜찮아, 다시 만나 웃을 수 있다면.”
지금부터는 이 영화 <써니>가 나에게 던졌던 세 가지 인상 깊은 질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첫 번째는 시간이 바꾼 것과 바꾸지 못한 것에 대한 고찰, 두 번째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붙이며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 마지막은 웃음과 눈물 사이의 정서를 조율하는 영화의 연출력에 관한 감상이다. <써니>는 웃기고 슬픈 영화가 아니다. 그건 우리가 웃고 울 수 있게 해주는 영화다.

1. 시간이 바꾼 건 얼굴뿐 — 변한 우리, 변하지 않은 마음
<써니>의 가장 큰 매력은 ‘현실성’이다. 중년이 된 나미는 누구보다 평범하고, 어쩌면 조금은 우울해 보인다. 딸은 점점 대화를 줄이고, 남편은 무관심하다. 그런 나미 앞에 고등학교 시절 친구 춘화가 병원 침대에 누워 다시 등장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절’을 보게 된다. 웃음 많고, 주먹질도 서슴지 않았던 그 시절의 여자 아이들. 그 모습은 지금의 나미와 너무 달라보인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알게 된다. 그 시절의 감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걸. 오히려 나미의 무기력함은 그 강했던 시절의 자신과 단절된 데서 오는 혼란이었는지도 모른다. 친구들을 다시 만나며 나미는 웃고, 욕하고, 뛰고, 울기 시작한다. 마치 주름진 얼굴 아래 숨어있던 열일곱 살의 감정이 다시 깨어나는 것처럼.
나는 이게 너무 현실적이라 오히려 더 슬펐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 얼굴도, 목소리도, 생각도 바뀐다. 하지만 어떤 감정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누가 날 지켜봤던 그 느낌, 함께 소리 내 웃었던 시간, 어떤 한 친구의 터무니없는 농담 하나에도 웃음을 터뜨리던 나. 그건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써니>는 그걸 정확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 속 친구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써니’를 외치는 장면은 단순한 추억 재현이 아니라, 감정의 회복이다. 우리는 여전히 그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 그걸 서로 확인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바꾼 건 외형일 뿐, 마음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다.

2. 추억은 되돌릴 수 없지만 — 과거를 안고 오늘을 사는 법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과거는 지나갔으니 잊어라.” 하지만 <써니>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오히려 과거를 꺼내어 ‘지금’과 연결하려 한다. 나미가 친구들을 다시 찾는 여정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다. 그것은 무너져가는 자신의 오늘을 다시 세우기 위한 감정적 발판이다.
우리는 흔히 추억을 ‘쓸모없는 감정’처럼 여기곤 한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다르다. 때로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바로 그 ‘추억’이라는 감정일 수도 있다. 내가 왜 이 길을 택했는지, 왜 이 사람을 좋아했는지, 왜 이 순간이 의미 있는지를 알려주는 건 결국 과거에서 비롯된다.
<써니>는 그걸 아주 따뜻하게 이야기해준다. 특히 춘화가 마지막 소원을 이야기하며 웃는 장면은, 삶이라는 것이 결국 한 시절의 감정을 붙잡고 끝까지 품는 일이라는 걸 보여준다. 모든 걸 이룬 게 아니라, 가장 좋았던 순간을 기억하고, 그것으로 마지막을 장식하는 삶. 나는 그게 진짜 행복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우리는 과거를 끊고 사는 게 아니라, 그 기억을 품고 오늘을 사는 것이다. <써니>는 추억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 추억으로 오늘을 다시 웃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말에 나는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3. 웃음과 눈물 사이 — 감정을 밀도 있게 엮은 연출의 힘
나는 <써니>를 보며 가장 감탄했던 지점이 바로 ‘감정의 조율’이었다. 이 영화는 웃기다가도 눈물이 나오고, 슬퍼지다가도 갑자기 웃긴 장면이 툭 튀어나온다. 그런데 그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감정선이 끊기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며 보여지는 방식이 너무나도 세련되었다. 과거의 나미가 어떤 사건을 겪고 있을 때, 동시에 현재의 나미가 그 기억을 되짚는 방식. 그 교차점은 감정의 깊이를 더하며, 관객의 몰입을 자연스럽게 끌어낸다. 덕분에 우리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지금’과 ‘그때’를 동시에 살아간다.
또한 인물들의 설정도 훌륭하다. 단순히 ‘친구’의 범주로 묶기엔 각 인물마다 너무도 독립적이고 입체적이다. 욕쟁이 장미, 강단 있는 춘화, 새침한 금옥, 순수한 복자 등. 이들은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 실제로 있었던 친구들 같다. 그래서 감정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만든 강형철 감독은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눈물을 흘리라고 하지 않아도 우리는 울고, 웃으라고 하지 않아도 미소가 난다. 그게 바로 연출의 힘이다. <써니>는 감정에 진심이고, 관객의 감정을 믿고 간다. 그 신뢰가 영화를 오래 남게 만든다.
이토록 웃긴데, 이토록 그리운 영화
영화 <써니>는 단순한 말장난이나 교훈을 주려 하지 않는다. 그저 한 시절을 진심으로 추억하고, 그 시절의 감정이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는 웃긴데 슬프고, 따뜻한데 먹먹하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한 번 내 과거를 꺼내봤다. 잊고 지냈던 친구들, 그때는 너무도 익숙해서 고마운 줄 몰랐던 순간들. 그리고 지금의 나를 다시 들여다봤다. 혹시 너무 무채색으로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혹시 과거의 나를 너무 멀리 두고 있는 건 아닌가.
<써니>는 말없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해주는 영화다. “너, 괜찮아. 지금도 잘 살고 있어.” 그리고 “예전에 웃었던 그 시절도, 지금 너에게 여전히 힘이 되고 있어.” 나는 그 말이 너무 고마웠다.
인생은 영화처럼 극적이지 않다. 하지만 영화는 우리 인생의 어느 한 페이지를 닮을 수 있다. <써니>는 그런 영화다. 한 페이지를 찢어내 다시 펼쳐보는 영화. 그래서 한 번쯤 잊고 있었던 그 시절의 나에게 말을 걸고 싶을 때, 다시 보고 싶은 영화.
언제든, 웃고 싶을 때. 그리고 누군가가 그리워질 때. <써니>를 꺼내보자. 그 안엔 변한 얼굴, 바뀐 삶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우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