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베테랑>을 처음 보았을 때, 내가 가장 크게 느꼈던 감정은 ‘시원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보게 된 <베테랑>은 단순히 시원한 액션 영화가 아니었다. 유쾌함 속에 날카로움이 있고, 통쾌한 주먹질 뒤에는 현실의 부조리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눈빛이 담겨 있었다. 한 마디로 이 영화는 ‘웃으며 화를 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영화였다. 그리고 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베테랑>이 단순한 대중영화를 넘어선 사회적 메시지를 품은 작품이라 느꼈다.
나는 사실 사회적 메시지를 앞세우는 영화들이 때로는 무겁고 진지하게만 흘러가는 게 아쉽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너무 직접적이면 설득력을 잃고, 너무 상징적이면 대중성과 멀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테랑>은 그 균형을 정말 잘 잡았다. 사회 문제를 유쾌하게 풀어내면서도, 결코 진지함을 놓치지 않는다. ‘돈이면 다 된다’는 재벌 3세와,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아야지’라고 말하는 형사의 대결 구도는 단순한 선악 대립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다.
영화는 초반부터 중반까지 정말 ‘웃기게’ 흘러간다. 황정민이 연기한 서도철 형사는 능글맞고, 무례하고, 정제되지 않았지만, 그 안에 진심이 있었다. 그는 관객이 대리만족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정의 구현자다. 나는 서도철이라는 캐릭터가 우리 사회가 바라는 ‘가까운 정의’의 상징이라고 느꼈다. 법과 제도보다 빠르게, 사건 현장에서 누구보다 직관적으로 반응하는 정의감.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요즘 점점 갈망하게 되는 정의의 모습 아닐까?
반면 유아인이 연기한 조태오는 너무나도 적나라한 ‘현실 속 악’이었다. 부유하고 교양 있는 척하지만, 속은 썩어 있는 인물. 나는 조태오를 보며 수많은 뉴스 속 인물들이 떠올랐다. 돈과 권력을 앞세워 어떤 법도, 어떤 도덕도 초월하려는 인간 군상들. 유아인의 연기는 그들의 교묘한 폭력을 생생하게 보여줬고, 관객은 본능적으로 분노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분노가 서도철의 주먹을 통해 해소될 때, 우리는 웃으면서도 이상하게 눈물이 난다. 너무 익숙한 현실을 너무 통쾌하게 때려줬기 때문이다.
<베테랑>은 그래서 단순한 액션 코미디가 아니다. 이건 시대에 던지는 일종의 외침이다. 약자는 무시당하고, 부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세상에서, 영화는 우리의 가슴을 속 시원하게 뚫어준다. 그게 비록 픽션일지라도, 영화관을 나서면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래,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아야지.”

1. 정의를 대변하는 인물들의 생생한 매력
<베테랑>의 가장 큰 매력은 캐릭터다. 평면적인 인물이 없고, 모두가 생생하게 살아 숨쉰다. 특히 형사팀은 그야말로 ‘생활형 정의 집단’이다. 이들은 멋진 수트도, 고상한 논리도 없지만,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회의 부조리에 맞선다. 나는 이런 팀 구성이 너무 좋았다. 영화 속에서 보기 드물게 팀워크가 돋보이고, 캐릭터 간의 유대감도 탄탄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서도철은 물론 핵심 인물이다. 황정민 특유의 유머감각과 생활 연기가 캐릭터를 살렸고, 관객은 그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는 단순한 ‘능력 있는 형사’가 아니라, 우리가 현실에서 보고 싶지만 보기 힘든 사람이다. 상식과 직감을 우선시하고, 권력 앞에서 움츠러들지 않으며, 잘못된 것을 보고 못 본 척하지 않는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이런 사람 한 명만 있어도 얼마나 든든할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형사팀의 동료들도 놓칠 수 없다. 오달수, 장윤주, 김시후 등 개성 넘치는 조연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캐릭터를 완성시킨다. 나는 특히 장윤주가 연기한 ‘미스 봉’이 참 인상 깊었다. 기존 남성 중심의 액션 영화에서 보기 힘든 강단 있고 유쾌한 여성 형사 캐릭터. 그녀는 차별화된 에너지로 극의 톤을 경쾌하게 만든다.
한편 조태오를 중심으로 한 ‘악의 팀’도 만만치 않다. 유아인의 연기는 정말 전율 그 자체였다. 그가 웃는 장면에서조차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단순히 나쁜 짓을 해서가 아니라, 악을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저지르기 때문이다. 재벌 3세 특유의 오만함과 타인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냉소가 캐릭터에 깊이를 더했다.
이렇게 선과 악의 캐릭터가 확실히 대비되면서도, 각자의 매력이 살아 있으니 영화는 훨씬 더 다이내믹하다. 나는 이런 점에서 <베테랑>이 단순한 이분법 구조를 넘어, 우리 사회의 다양한 군상과 그들이 충돌하는 방식을 아주 능숙하게 그려냈다고 느꼈다.

2. 웃음과 분노를 동시에 이끄는 ‘정의감의 설계’
<베테랑>은 웃기지만, 그 웃음이 단순한 유희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는 웃음을 통해 분노를 증폭시키고, 분노를 통해 통쾌함을 선사한다. 나는 이 정서적 구성이 정말 절묘하다고 생각한다. 관객은 영화 내내 유쾌하게 웃지만, 웃음 속에는 언제나 분노가 깔려 있다. “아, 진짜 저런 놈 현실에도 있지.” 하고 웃다가, 결국은 그 ‘놈’이 응징당할 때 박수를 치게 된다.
그 중심에 있는 게 바로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아야지’라는 명대사다. 이 대사는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베테랑>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다.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직접적인 표현이지만, 그래서 더 강력하다. 나는 이 대사를 들을 때마다 어떤 법적 정의나 도덕적 판단보다 더 강한 감정을 느꼈다. 이건 머리로 납득하는 정의가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하는 정의감이다.
또한 영화의 전개 방식이 ‘정의 구현’을 아주 유쾌하게 구성했다는 점이 좋았다. 경찰 조직 내부의 비리, 기업과 언론의 유착, 정치권과 자본의 끈적한 관계까지 슬쩍 보여주지만, 영화는 그것을 무겁게 끌고 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의 부조리를 하나씩 걷어내며 관객을 웃기고, 다시 분노하게 하고, 결국은 통쾌하게 한다.
나는 이런 방식을 통해 <베테랑>이 ‘국민 정서’에 정확히 호응한 작품이라고 느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부조리하고 억울한 일들로 가득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현실을 조롱하듯 뒤집어 놓는다. 현실에서는 잘 되지 않는 정의가, 스크린 속에서는 유쾌하게 실현된다. 그리고 그 장면을 보며 관객은 잠시나마 위로받는다.

3. 사회를 비트는 유쾌한 풍자와 대사들의 힘
<베테랑>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 또 하나의 이유는, 사회 풍자를 대사로 풀어내는 힘이었다. 단순히 대사가 웃긴 게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찌르고 조롱하는 방식이 정말 통쾌했다. 나는 이런 ‘위트 있는 각성’이야말로 한국형 블랙코미디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 유아인의 대사, “어이가 없네”는 단순한 인터넷 밈이 아니라, 재벌의 오만과 무책임함을 상징하는 대사다. 그 말투와 표정 하나로 조태오의 인성이 드러나고, 관객은 단 한 줄의 대사로 이 캐릭터를 규정할 수 있다. 이런 대사는 단순한 대중적 재미를 넘어서, 사회를 꼬집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황정민의 대사도 마찬가지다.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아야지”는 어떤 법적 용어보다 더 단순하고 강력한 정의의 언어다. 이런 표현이야말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가 체감하는 감정에 더 가까운 말들이다. 나는 이 대사들이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시대의 분노와 갈증을 대표하는 상징어라고 느꼈다.
이처럼 <베테랑>은 현실을 전면적으로 비판하지 않으면서도, 교묘하게 풍자한다. 그리고 그 방식이 대사를 중심으로 유쾌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관객은 거부감 없이 영화를 따라간다. 나는 이런 ‘말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영화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그래서 그냥 ‘재미있는 영화’가 아니라, **‘잘 만든 영화’이자 ‘필요한 영화’**다. 우리가 웃으면서 현실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작품. 그런 작품이 진짜 오래 남는다.

베테랑, 현실을 이겨내게 해주는 영화적 정의
<베테랑>은 내가 영화관을 나오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드문 영화였다. 단순히 잘 만든 영화라서가 아니라, 이 영화가 내 안에 쌓여 있던 답답함을 시원하게 해소해 줬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정의 구현’이 스크린 위에서 펼쳐지고, 우리는 그 장면을 보며 비로소 웃고, 박수치고, 울컥하게 된다.
나는 이 영화가 보여준 ‘정의’가 단지 서도철 개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간직하고 싶었던 감정의 조각이라고 느꼈다. 유아인의 연기를 보며 ‘저런 놈 진짜 있지’라고 분노하다가, 황정민의 한 방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그 감정의 흐름.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짜 힘이다.
<베테랑>은 화려하지도 않고, 구조적으로 복잡하지도 않다. 하지만 진짜 어려운 건, 단순한 구조 안에 진심과 웃음, 분노와 희망을 모두 담아내는 것이다. 나는 이 영화가 바로 그걸 해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덕분에 이 작품은 ‘한국형 정의 구현 영화’의 모범처럼 느껴진다.
요즘 같은 시대에, 정의라는 단어는 너무 쉽게 소비되고 너무 자주 변질된다. 그런 시대일수록 우리는 <베테랑> 같은 영화를 더 자주 떠올릴 필요가 있다. 현실이 너무 버겁고, 뉴스가 너무 불쾌할 때, 이 영화를 다시 보면 조금은 나아진다. 마치 누군가 내 대신 화를 내주고, 정의를 실현해주는 느낌.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기분 전환용’이라기보다, 감정 정화용이라고 부르고 싶다.
마지막 장면에서 조태오가 처절하게 무너지고, 형사팀이 박수를 치며 사건을 마무리하는 그 장면. 거기엔 영화적인 클라이맥스를 넘어, 관객의 감정까지 마무리해주는 따뜻한 정서가 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 아직 영화 속에서라도 정의가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그 다행함 덕분에, 나는 오늘도 조금 더 현실을 견딜 수 있다.
그게 바로 <베테랑>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선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