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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거래 속 권력의 민낯, 허위 정의, 끝없는 조작의 고리

by 세리옹 2025.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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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거래 속 권력의 민낯, 허위 정의, 끝없는 조작의 고리
부당거래 속 권력의 민낯, 허위 정의, 끝없는 조작의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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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많이 보면서도, 가끔은 마음속에 오래도록 맴도는 장면이나 대사가 있다. 나에게 <부당거래>는 그런 영화다. 처음 볼 땐 그냥 복잡하고 냉소적인 범죄 스릴러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니 이건 우리 사회를 정면으로 때리는 통렬한 고발 같았다. 사실 제목부터 이미 많은 걸 암시한다. ‘부당한 거래’란 건 말 그대로 정당하지 않다는 뜻인데, 이 영화는 그 부당함이 단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시스템 전체의 본질적인 구조라는 점을 너무도 차갑고 정교하게 드러낸다.

<부당거래>의 세계는 무너진 도덕과 위선으로 가득하다. 경찰은 치안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숫자로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검찰은 정의 실현보다 정치적인 유불리를 먼저 계산한다. 기자는 진실을 전달하기보단 이슈에 올라탈 거리를 찾고, 대기업은 법 위에 군림하는 공생 구조의 핵심이다. 이 모든 것이 조용히, 그러나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보면서 느꼈다. 이건 영화가 아니라 현실을 조금만 극대화한 모형도라고. 그리고 그 사실이 가장 무서웠다.

류승완 감독은 늘 묵직한 사회 비판을 영화 속에 녹여내는데, <부당거래>는 그 중에서도 가장 노골적이고도 치밀하다. 이 영화는 선악의 구도를 흐리고,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이 어떻게 구조 속에서 정당화되는지를 보여준다. 황정민이 연기한 최철기 형사는 정의롭지도, 그렇다고 악당이라고만 할 수도 없는 복잡한 캐릭터다. 그는 경찰이지만 스스로 ‘조작’을 감행하고, 한편으로는 동료와의 의리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나는 그를 보며, 우리가 너무 쉽게 구분해온 ‘선과 악’이 얼마나 허약한 기준인지 다시 느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점은, ‘누구도 완전히 무죄하지 않다’는 메시지다. 처음엔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그가 저지르는 조작에 스스로도 당황하게 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럴 수밖에 없었잖아’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게 이 영화가 관객을 죄책감에 빠뜨리는 가장 교묘한 방식이다. 나는 이런 점이 이 작품이 단순한 범죄물이 아닌, 심리극에 가까운 정치 스릴러라고 느끼게 한 이유라고 본다.

무엇보다 영화는 끝까지 불편함을 유지한다. 사건이 마무리되는 순간조차 후련하지 않고, 오히려 허무하고 씁쓸하다. 그건 현실에서도 비슷하다. 모든 게 밝혀지고, 누군가 책임을 지더라도 세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그 구조 자체가 너무도 단단하게 서로를 감싸고 있기 때문에, 한 명이 빠져나가도 금세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메운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우리가 늘 믿고 있는 ‘정의’라는 단어가 얼마나 허약하고, 조건적이며, 때론 타협적일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됐다. <부당거래>는 영화라서 다행인 게 아니라, 너무 현실 같아서 더 아프고 무섭다.

부당거래 속 권력의 민낯, 허위 정의, 끝없는 조작의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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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의를 가장한 권력의 거래

<부당거래>의 가장 본질적인 주제는 ‘권력’이다. 그것도 정의를 가장한 권력. 영화는 연쇄살인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실질적으로 이야기의 중심은 그 사건을 둘러싼 경찰, 검찰, 언론, 기업의 이면 거래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이 모든 거래가 ‘공공의 정의’를 위해 진행된다는 명분 아래 이뤄진다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이 가장 소름 끼쳤다. 우리가 뉴스에서 접하곤 했던 수많은 사건들—유전무죄, 무전유죄, 스폰서 검사, 유착 언론—그 모든 장면들이 영화 속에서 아주 구체적인 디테일로 살아 숨쉰다. 황정민이 연기한 최철기 형사는 실적 압박에 시달리다 결국 조작을 택한다. 하지만 단순히 자신의 영달을 위한 선택이라 보기엔 너무나 복잡한 배경과 맥락이 있다. 나는 그의 행동이 절대 옳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를 둘러싼 상황의 압력이 너무도 현실적이라 괴로웠다.

영화 속 검찰도 마찬가지다. 유해진이 연기한 주양 검사는 정의 실현보다 경찰을 휘어잡기 위한 수단으로 사건을 이용한다. 그의 태도는 냉소적이고 계산적이다. 나는 이런 장면에서 우리가 그동안 ‘법조계의 최후 보루’라고 생각해온 검찰의 환상이 무너지는 걸 느꼈다. 특히 검찰이 경찰의 조작을 알고도 언론 플레이로 덮으려 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핵심이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보여지는 그림이 중요할 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언론은 진실을 추적하기보단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공장처럼 기능한다. 진실의 수호자가 아니라, 기획된 정의를 포장하는 광고 대행사 같은 느낌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현대 사회에서 ‘정의’는 개념이 아니라 브랜드처럼 느껴졌다. 권력자들이 각자의 필요에 따라 포장하고 소비하는 브랜드. 그래서 우리는 쉽게 속고, 또 쉽게 이용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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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진실보다 중요한 ‘성과’의 허상

<부당거래> 속 경찰들은 범인을 잡기 위해 조작을 택한다. 물론 현실에서도 실적 압박은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구조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드러낸다. 진짜 범인을 잡는 것보다 중요한 건, ‘잡았다는 결과’ 그 자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영화가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비극을 정면으로 겨눈 문제작이라고 확신하게 됐다.

최철기 형사가 범인을 조작하면서 느끼는 갈등은 극단적이지만 납득 가능한 심리다. 그는 처음엔 불안해하지만, 결국 성과와 칭찬, 조직 내 입지를 얻게 되자 자신이 선택한 방식에 대해 점점 확신하게 된다. 나는 이 과정을 보며 인간의 도덕성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느꼈다. 특히 시스템이 그것을 장려하거나 묵인할 때는 더 그렇다.

더 무서운 건 이 조작이 단순히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조직 전체가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사도, 부하도, 언론도 모두 이 ‘성과’의 허상에 올라타고, 결과만 소비한다. 그 와중에 진실은 땅속에 묻히고, 피해자는 더 큰 상처를 받는다. 나는 이런 부분이 너무 가슴 아팠다. 특히 언론 브리핑 장면에서 경찰들이 환호를 받는 장면은, 뭔가를 잘 해낸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그 속이 텅 빈 성공이라는 점에서 씁쓸하기만 했다.

성과 중심주의는 우리 사회 곳곳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학교, 직장, 공공기관, 언론, 정치, 그 어디든 결과가 전부인 세계가 펼쳐져 있다. <부당거래>는 그런 사회 구조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숫자와 성과라는 것이 때로는 진실을 가장 교묘하게 왜곡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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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스템 속 인간의 도덕적 붕괴

<부당거래>는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시스템이 인간을 얼마나 무너뜨릴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도 인간이 얼마나 쉽게 타협하는지를 보여준다. 최철기, 주양, 기자, 기업인… 이들은 모두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고, 결국 각자의 이익을 택한다. 나는 이 영화가 던지는 가장 뼈아픈 질문이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저 상황에서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까?”

사실 누구나 정답은 안다. 진실을 말해야 하고, 조작하지 말아야 하며,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그 정답은 늘 무력해진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도 수없이 자문하게 됐다. 내가 저 상황의 형사였다면? 저 검사였다면? 기자였다면? 그 답이 명확하지 않다는 게 너무 무서웠다.

영화는 누군가를 전면적으로 악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모두에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부여한다. 그래서 더 힘들다. 악인을 미워하기도 어렵고, 선한 인물을 찾기도 어렵다. 모두가 그저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존재일 뿐이다.

그리고 영화는 결국 이 시스템이 어떤 식으로 인간을 망가뜨리는지 보여준다. 최철기의 마지막 선택, 그 냉소적인 결말은 단지 한 사람의 몰락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정의를 어떻게 취급하고 소비하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그 마지막 장면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비극은 누군가가 죽어서가 아니라, 모두가 조금씩 타협하고 무너졌다는 데 있다.

부당거래 속 권력의 민낯, 허위 정의, 끝없는 조작의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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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거래>는 보고 나면 기분이 나빠지는 영화다. 그런데 그 불쾌함이 단지 등장인물들의 부패나 조작 때문만은 아니다. 더 큰 이유는, 우리가 그 세계를 어딘가에서 본 듯한 익숙한 풍경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경찰의 실적주의, 검찰의 정치성, 언론의 선정성, 기업의 로비… 이 모든 것이 낯설지 않다. 오히려 너무 현실적이라서 불편하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었다.
“나는 과연 저들보다 나은가?”

이 영화가 특별한 건, 단순한 부패 고발이 아니라, 관객을 공범의 심정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이다. 정의로운 얼굴을 하고 살아가지만, 사실은 많은 부조리를 눈감고, 외면하고, 때론 편승하기도 한다. 우리도 언젠가는 숫자로 평가받는 시스템에 순응했고, 진실보다 결과가 중요하다는 구조에 순치된 적 있다. <부당거래>는 그걸 눈앞에 쓱 들이밀며, 관객에게 고통스럽도록 정직한 질문을 던진다.

황정민의 눈빛, 유해진의 교활함, 류승범의 허무한 시선… 이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로도 완벽에 가깝다. 나는 이들의 연기가 너무나 현실적이라 더 힘들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이건 영화야’라는 거리감이 생기지 않았다. 그건 연기의 힘이기도 하고, 대본과 연출의 힘이기도 했다. 류승완 감독이 정말 한국 사회의 본질을 너무 정직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나는 <부당거래>를 그냥 ‘좋은 영화’라고 말하기보단, 불편하지만 반드시 봐야 하는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종종 정의를 말하지만, 그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타협과 부조리가 존재하는지 모르고 넘어갈 때가 많다. 이 영화는 그걸 눈뜨고 보게 만든다. 그래서 힘들고, 그래서 강력하다.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면, 통쾌함 대신 씁쓸함이 남는다. 하지만 나는 그 씁쓸함이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바뀌는 건 없다. <부당거래>는 그걸 몸으로 체감하게 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정답을 주진 않지만, 최소한 질문은 정확하게 던진다. 그 질문이 오늘도 내 마음 어딘가에서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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