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말, 극장가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킨 영화 한 편이 있었다. 제목은 단 세 글자, 그러나 그 속에 담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영화 <서울의 봄>은 단순한 정치 드라마도, 군사 스릴러도 아니다. 이 영화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숨 가빴던 9시간을 배경으로, ‘권력’이라는 이름의 괴물이 얼마나 무서운 파괴력을 가졌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단순히 과거의 재현을 보는 게 아니라, 현실을 향한 거울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만큼 진지하고, 절박하고, 날이 서 있다.
이준익 감독이 아닌 김성수 감독이라는 이름에 처음엔 의아했지만, 그는 액션 장르에서 보여줬던 긴장감 연출력을 여기에 오롯이 쏟아부었다. 군사 쿠데타라는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고 마치 서스펜스 장르를 보는 듯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나는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이 역사적 사실을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내는 그 균형감각이라고 느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등장인물들의 ‘말’과 ‘표정’이다. 황정민이 연기한 전두광(전두환을 연상시키는 인물)은 말을 아끼고, 표정으로 말한다. 그의 눈빛은 카리스마가 아니라 ‘오만’과 ‘확신’으로 가득하다. 반면 정우성의 이태신(실존 인물 채홍철 장군을 모티프로 한 듯)은 끝없는 갈등과 분노, 책임감 사이를 오간다. 나는 이 둘이 마주 보는 장면에서, 그 누구보다도 격렬한 ‘신념의 대화’를 느꼈다. 총이 아닌 말로 싸우는 이들의 전투는 오히려 총칼보다 더 긴박하고 무섭게 다가왔다.
<서울의 봄>은 단지 12·12 군사 반란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지금의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저 상황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겠는가?”라는 물음이다.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정의로운 선택이 옳은 줄 알면서도, 그 대가가 너무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단순한 ‘재연 영화’가 아니라, 양심과 용기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 날의 서울은 차가웠다. 탱크가 시내를 달렸고, 총성이 울렸으며, 누군가는 그저 조용히 기다렸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끝까지 자리를 지킨 이들의 얼굴이 바로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본 뒤,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역사의 책임’이라는 말을 꺼내게 됐다. <서울의 봄>은 단순히 과거를 되짚는 영화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역사의 무게를 되묻는 작품이다.

1. 혼돈의 정점, 권력 쟁탈의 그림자
<서울의 봄>의 핵심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권력의 추악함’이다. 전두광이라는 인물은 단순히 군사 반란의 주동자가 아니다. 그는 그 어떤 법과 명분보다도 ‘권력’이라는 목적에만 몰두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다. 나는 이 인물을 보며 단순한 악당이라기보다, 권력 중독자라는 표현이 더 맞겠다고 느꼈다.
그의 행동은 철저히 계산되어 있다. 부대를 움직일 때도, 사람을 설득할 때도, 심지어 동료를 배신할 때도 그는 흔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에게 중요한 것은 ‘국가’도 ‘정의’도 아닌, 자기 손에 쥘 권력의 무게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를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냉정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관객 스스로 그 인물을 판단하게 만든다.
나는 이 대목에서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관통한 수많은 권력자들이 떠올랐다. 언제나 ‘대의명분’을 내세웠지만, 결국 그 배경엔 개인의 욕망이 있었던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서울의 봄>은 그 부분을 아주 선명하게 드러낸다. 권력이 어떻게 사람을 망가뜨리고, 정의를 왜곡하며, 공동체 전체를 위기로 몰고 가는지를, 이 영화는 9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모두 보여준다.
특히 영화 속 전두광은 절대 악으로 그려지기보다는, 지독하게 현실적인 악인으로 그려진다. 그는 관객을 향해 묻는다. “나 아니면 누가 할 수 있겠느냐?”라고. 그 오만함 속에서 나는 오히려 두려움을 느꼈다. 바로 그 태도가 진짜 권력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를 보며, 이런 인물이 단지 과거의 산물이 아니라 지금도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무서웠다.

2. 극한의 위기 속에서 피어난 신념
정우성이 연기한 이태신은 영화의 정중앙에서 ‘버텨야 할 이유’를 상징한다. 그는 실력 있는 군인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줄 아는 전략가이지만, 무엇보다도 자기 신념에 끝까지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나는 이 인물을 통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진짜 ‘정의’를 보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알고 있다. 정면으로 맞서면 질 수밖에 없다는 걸. 전두광이 준비한 쿠데타는 치밀했고, 이미 대부분의 병력이 장악당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법’과 ‘절차’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그 장면들이 너무 현실 같아서 오히려 가슴이 먹먹했다. 불의에 맞선다는 건 거창한 말이 아니다. 그저 내 자리를 지키는 것, 흔들리지 않는 것, 그리고 말해야 할 때 말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모여서 하나의 저항이 된다.
특히 이태신은 그 위기의 순간에도 사람을 살피고,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애쓴다. 영화에서 그는 전투를 피하지 않지만, 동시에 불필요한 희생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나는 이 모습이야말로 진짜 ‘리더’의 모습이라고 느꼈다. 총을 드는 사람보다, 총을 끝까지 내려놓지 않으려는 사람의 용기가 훨씬 위대하다는 사실을 이 인물을 통해 알게 됐다.
개인적으로 정우성의 연기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무겁고 절제된 감정 연기가 영화의 긴장감을 더했고, 그의 ‘침묵’은 어떤 대사보다 강하게 다가왔다. 이태신이라는 인물은 단지 전두광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 ‘무너진 질서를 붙잡기 위해 남겨진 마지막 손’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3. 9시간의 충돌이 남긴 역사적 교훈
이 영화는 전체 러닝타임 대부분을 9시간의 시점에 집중시킨다. 매우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이 9시간 동안의 결정은 한국 현대사 전체를 뒤흔들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영화가 가지는 역사적 메시지의 힘을 새삼 실감했다.
우리 모두는 안다. 결국 전두광이 승리한다는 걸. 그런데도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조마조마했던 건, ‘그 결말’이 지금도 우리 사회 어딘가에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봄>은 그 9시간 동안 사람들이 어떤 판단을 했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낱낱이 보여줌으로써, 관객 스스로가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묻게 만든다.
또한 영화는 역사를 단지 영웅담으로 재구성하지 않는다. 모든 인물이 완벽하지 않고, 상황은 복잡하며, 선택은 언제나 위험을 수반한다. 나는 이 점에서 이 영화가 매우 성숙한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느꼈다. 단지 과거의 악을 규탄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선택이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서사를 구성했다.
그리고 나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진짜 봄은, 전두광이 패배하는 순간이 아니라, 누군가가 끝까지 자리를 지켜줬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어떤 서울에 살고 있는가
영화를 본 지 며칠이 지났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에 질문이 남아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은, 과연 그날 이후 나아졌는가?”
나는 <서울의 봄>이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1979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2024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확히 닿아 있다. 왜냐하면 권력의 야망, 개인의 신념, 그리고 정의라는 단어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통해 나는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정의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결국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의 몫이라는 것을.
총을 드는 자가 아닌, 총을 내려놓는 자의 용기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첫걸음이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누군가 그 자리를 지켜줬기에, 지금 이렇게 봄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영화는 끝났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시작이었다.
이제는 내가 묻고 싶다.
“만약 또 다른 9시간이 온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리고,
“지금의 서울은 정말 그 봄을 지킬 수 있을 만큼 단단해졌는가?”
<서울의 봄>은 단지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우리의 오늘을 흔들고, 내일을 되묻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이 영화는 꼭,
지금 이 순간의 우리에게 필요한 영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