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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 속 생존 본능, 권력의 괴물성, 인간성의 붕괴

by 세리옹 2025.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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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 속 생존 본능, 권력의 괴물성, 인간성의 붕괴
아수라 속 생존 본능, 권력의 괴물성, 인간성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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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다는 건 때로는 현실을 잠시 잊는 일이지만, <아수라>를 본다는 건 현실보다 더 지옥 같은 세계에 잠시 발을 담그는 경험이었다.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정말 말 그대로 숨이 막혔다. 미장센 하나하나, 인물의 눈빛, 대사 한 마디가 전부 뭔가 찝찝하고 불쾌하게 다가왔고, 그것들이 모여 거대한 폭력과 절망의 회오리로 관객을 빨아들였다. 영화가 끝났을 때는 뭔가를 본 것 같지도 않은데, 몸 전체가 무거워졌던 기억이 있다.

<아수라>는 흔히 말하는 '범죄 스릴러'나 '액션 누아르' 같은 틀로는 결코 묶을 수 없는 영화다. 이 작품은 장르가 아니라 지옥 그 자체를 형상화한 세계다. 이 세계에는 선과 악의 개념이 없다. 모든 인물들이 그저 생존을 위해, 욕망을 위해, 그리고 때로는 아무 이유도 없이 서로를 짓밟고 찢는다. 나는 이 영화에서 ‘서사’보다는 ‘감정’이, ‘스토리’보다는 ‘질감’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정우성, 황정민, 곽도원, 주지훈. 이 배우들의 이름만으로도 이미 강한 기대감이 있었지만, 그 기대는 영화가 시작한 지 10분 만에 완전히 뒤틀렸다. 이들이 연기하는 인물은 우리가 알고 있던 그들의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모두가 도저히 감정이입할 수 없는 ‘비인간’에 가까운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상하게도 끝까지 이 인물들에 집중하게 되었고, 그들의 지옥 같은 삶을 끝까지 지켜보게 되었다.

특히 정우성이 연기한 ‘한도경’은 딱히 악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선한 면도 거의 없다. 경찰이지만 양심은 오래전에 버렸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떤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나는 그의 모습에서 어떤 분노보다 더 깊은 무기력함과 체념을 느꼈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간의 도리를 놓아버린 사람이고,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황정민의 ‘박성배’는 그 지옥의 ‘군주’ 같은 존재다. 시장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그의 말 한 마디, 몸짓 하나에는 권력과 폭력의 비린내가 뚝뚝 묻어난다. 나는 황정민이 이 역할을 연기할 때, 진짜 본인이 악마와 계약이라도 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영화 내내 ‘이 인간은 인간이 맞는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곽도원의 검사 ‘김차인’이나 주지훈이 연기한 ‘문선모’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이 거대한 썩은 구조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고, 누구도 결백하지 않다. 나는 <아수라>를 보면서, 우리 사회 어딘가에도 이런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소름이 끼쳤다. 단지 현실에서는 더 은밀하게, 더 세련되게 감추고 있을 뿐.

이 영화는 진짜 무섭다. 괴물이 무서운 게 아니라, 괴물이 너무 현실적이라 무서운 영화다. ‘나도 저 상황이라면 저렇게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영화. 그래서 <아수라>는 단지 스릴러가 아니라, 현대 사회에 던지는 지옥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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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벼랑 끝에서 발버둥치는 인간들

<아수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생존 본능만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누가 더 나은 인간이냐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누가 조금 더 늦게 무너지는가, 누가 먼저 상대를 배신하는가, 누가 더 적은 죄책감을 느끼는가… 그런 잣대만 남는다. 나는 이런 인물 구성에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한 핵심이 보였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절벽 끝에 몰리면 선과 악조차도 ‘사치’가 된다는 것이다.

한도경은 그 전형적인 인물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부패한 경찰로 보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는 우리가 예전에 ‘사람’이라 불렀던 어떤 면조차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그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설명되지 않지만, 나는 오히려 그 불친절함이 더 현실적이라고 느꼈다. 누구나 처음부터 괴물은 아니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무뎌지고, 타협하고, 결국은 적응한다.

한도경의 생존 방식은 처절하다. 그는 양쪽, 아니 다섯 방향의 칼끝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며 살아간다. 박성배와는 공생 관계처럼 보이지만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고, 검찰 쪽에 정보를 넘기면서도 자신이 먹힐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그가 선택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진심으로 숨이 막혔다. 이건 범죄 스릴러가 아니라 일종의 생존 다큐멘터리 같았다.

다른 인물들도 다르지 않다. 곽도원의 검사는 정의를 위한다는 명분은 구실일 뿐이고, 그 역시 한도경을 자신의 도구로만 쓴다. 주지훈의 캐릭터는 형사의 틀을 가졌지만, 폭력과 탐욕 그 자체로 움직이는 인물이다. 이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건, 도덕이 아니라 공포와 욕망에 의해 작동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나는 이 설정이 이 영화를 아주 특이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관객은 누구 하나에게도 감정을 온전히 실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안에서 묘한 동정심과 연민이 생긴다. 그건 캐릭터 자체 때문이 아니라, 우리 안에도 ‘나도 저럴 수 있다’는 자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무섭도록 진실하고, 지독할 만큼 솔직하다.

아수라 속 생존 본능, 권력의 괴물성, 인간성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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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권력과 폭력의 유착, 그 추악한 실체

<아수라>의 진짜 주인공은 어쩌면 ‘박성배’다. 그가 말하는 한 마디, 그의 존재감은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권력과 폭력이 어떻게 하나의 체계를 이룰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 같다. 그는 ‘시장’이라는 합법적 지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지위를 통해 온갖 불법을 저지른다. 그리고 중요한 건, 그걸 당당하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황정민은 이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정말 다른 차원의 ‘악’을 만들어냈다. <신세계>에서의 고급진 조폭과는 또 다른, 권위와 기괴함이 결합된 괴물이었다. 나는 박성배가 누군가를 협박할 때의 낮은 목소리보다, 웃으면서 칭찬할 때가 더 무서웠다. 왜냐하면 그 웃음이 너무 진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악을 인식하지 못하는 진짜 악이다.

영화 속 권력과 폭력의 결합은 마치 정치적 풍자극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건설사, 경찰, 시청, 검찰까지 모두 하나의 연결고리로 묶여 있고, 그 중심에 ‘박성배’가 있다. 나는 이 연결고리가 단지 영화적 장치가 아니라, 실제 우리 사회 어딘가에도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무서웠다.

더 무서운 건, 이 유착 구조 안에서는 정의를 외치는 사람조차 도구로 쓰일 뿐이라는 것이다. 곽도원의 검사는 정의를 말하지만, 그 역시 자신의 야망을 위해 사람을 집어삼킨다. 박성배와 다를 바 없다. 결국 이 세계에서는 ‘정의’조차 폭력과 다르지 않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믿고 있던 권력의 이미지가 얼마나 허위일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아수라 속 생존 본능, 권력의 괴물성, 인간성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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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간다움이 파괴된 도시, 지옥의 한복판

영화의 공간 배경도 인상적이다. 특정 지역 이름은 없지만, 도시 전체가 썩어 있다. 빛이 없고, 자연이 없다. 경찰서도 어둡고, 시장실도 낡았고, 모든 공간에서 ‘청결’과 ‘희망’이라는 말은 사라져 있다. 나는 이 배경이 단순한 미장센이 아니라, 영화가 말하는 세계관의 시각적 구현이라고 느꼈다.

<아수라> 속 도시는 인간성이 사라진 곳이다. 공권력은 무너졌고, 법은 거래 수단이 되었고, 사람들은 누구도 믿지 않는다. 나는 이런 배경을 통해 감독이 우리에게 던지고자 한 질문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사는 도시는 정말 다를까?”

사실 가장 끔찍한 건, 이 영화가 전혀 비현실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과장이 심하지도 않고, 캐릭터들이 갑자기 악해지지도 않는다. 그들은 점진적으로 무너지고, 조금씩 타협하고, 그러다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한다. 나는 이 과정이 너무 현실 같아서,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떤 숨겨진 폭로를 보는 것처럼 불편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감독이 결국 보여주는 건, 지옥은 딴 데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도시 그 자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살아가며, 때로는 타인을 밟고, 때로는 자신을 속이며, 결국엔 조금씩 괴물이 되어간다. 이 영화는 그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수라 속 생존 본능, 권력의 괴물성, 인간성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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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는 단지 ‘강한 영화’가 아니다. 이건 어떤 면에서는 우리 안의 괴물을 마주하게 만드는 실험실 같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기분이 찝찝했지만, 동시에 내 안에도 도경 같은 무기력함, 박성배 같은 욕망, 김차인 같은 계산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무서워졌다.

이 영화는 절대로 친절하지 않다. 감정선을 따라가기도 어렵고, 누가 주인공인지도 모호하다. 끝까지 한 줄기 희망도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이 영화의 진짜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은 우리에게 ‘무너진 인간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고, 나는 그것을 보면서도 외면할 수 없었다.

정우성은 <아수라>에서 자신의 미남 이미지를 완전히 깨부쉈다. 눈 밑이 짓무르고, 표정에는 삶의 의지가 사라진 인물. 그 연기는 강렬했고, 그 안에 담긴 체념이 오히려 가장 슬펐다. 황정민은 정말 이 시대의 악당 연기의 정점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곽도원과 주지훈, 이들의 텐션은 영화의 균형을 완벽히 잡아줬다.

나는 이 영화를 추천할 때 항상 한 마디를 덧붙인다. “기분 좋아지려고 보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꼭 한 번은 봐야 한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우리가 외면했던 현실의 어떤 부분을 아주 직설적으로 들춰낸다. 그 안에서 웃고 있는 괴물들이 실은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는 걸 느낀다면, 그 찝찝함은 분명히 가치 있는 것이다.

<아수라>는 어쩌면 지금 우리 시대를 가장 적나라하게 그려낸 사회적 지옥도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말한다.
“지옥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지금 네가 발 딛고 있는 그곳일 수도 있어.”
나는 이 영화를 통해, 가끔은 그런 현실을 직시할 용기도 필요하다는 걸 배웠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내게 오랜 시간 잊히지 않는 상처 같은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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