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값도 못했던 시절, 변호사가 되다
- 한 청년의 고문, 한 인간의 각성
- 끝내 지켜야 할 신념은 무엇인가
📝 권력의 바람 앞에서 무너지지 않은 이름
영화 〈변호인〉을 처음 봤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한 치의 위로도 없이, 가슴을 짓누르는 묵직한 진실 앞에서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극장을 나섰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법정 드라마'나 '감동 실화'로 분류하기엔 아깝고, 또 무겁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변호인〉은 故 노무현 대통령의 실제 삶에서 영감을 받은 이야기입니다. 부산에서 세금 전문 변호사로 돈 잘 벌던 평범한 사내가, 한날 한시에 고문 피해자를 변호하게 되면서 '인권 변호사'로 각성해 가는 여정을 그립니다. 이 흐름이 너무나 인간적이라,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됩니다. 돈 벌던 삶도 이해가 가고, 용기 내기까지 망설이는 과정도 고스란히 공감됩니다. 나는 오히려 그가 '완벽하지 않음'에 끌렸습니다. 처음부터 영웅이었던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일어난 부조리 앞에서 망설이고, 화내고, 결국 행동한 사람이기에 더욱 진짜였습니다.
특히, 8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이 영화 전반에 짙게 배어 있습니다. 나는 그 시대를 살진 않았지만, 부모님과 선배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렴풋이 느끼던 공포와 침묵의 분위기가 이 영화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났습니다. 시민이 국가의 적이 되는 아이러니, 법이 권력의 도구가 되는 현실, 그리고 그 속에서 정의를 외친다는 것이 어떤 고통을 동반하는지 영화는 치열하게 보여줍니다.
〈변호인〉은 '한 명의 변호사'를 통해 '시민 한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증명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묻습니다. "당신이라면, 그 자리에 설 수 있겠는가?" 이 질문이 나에게 너무나 직접적이라, 영화를 본 뒤 며칠 동안 나 자신을 계속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작품이었습니다. 이제부터 그 안의 세 가지 주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려 합니다.
주제 1: 밥값도 못했던 시절, 변호사가 되다
〈변호인〉의 초반은 참 소박합니다. 오히려 그 점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영화는 주인공 송우석(송강호 분)이 성공한 법조인이 되기 전, 밥값도 못 내던 고졸 청년이었던 시절부터 보여줍니다. 이 배경은 캐릭터에 깊이를 더하고, 후반의 변화에 설득력을 줍니다. 법대에도 어렵게 들어갔고, 사법시험은 남들보다 늦게 통과했습니다. 게다가 변호사가 된 후에도 '세금 전문'이라는 비주류 영역에서 힘겹게 자리를 잡아야 했습니다.
사실 나는 이 부분이 가장 인간적이고 좋았습니다. 흔히 '변호사' 하면 엘리트, 특권층을 떠올리기 쉽지만, 송우석은 그런 틀에 전혀 들어맞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본주의적 생존에 충실했던, 평범한 소시민에 가까웠습니다. 집 살 돈 벌고, 아들 뒷바라지 하고, 친구들과 술 한잔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정에 약하다’는 점입니다. 과거 식당에서 밥을 얻어먹던 아주머니의 부탁 하나에 그는 인생을 건 싸움에 나섭니다. 처음엔 망설이고, 피하려 하다가도, 결국 ‘사람’ 때문에 움직이는 그의 모습은 우리 모두가 잃지 말아야 할 본성을 상기시킵니다.
이 영화가 단지 ‘정의로운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현실의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유는 아마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창한 이념보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쌓인 인간 관계와 기억이 누군가의 삶을 바꿉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또 다른 누군가를 움직입니다. 나는 이 영화에서 '진짜 힘'이란 그렇게 순환하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주제 2: 한 청년의 고문, 한 인간의 각성
영화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달라지는 시점은 '부림 사건'이 등장하면서부터입니다. 철저히 정치적 조작이 개입된 이 사건은, 국가가 만든 허구였습니다. 단순히 책 몇 권 읽고, 정치적 토론을 한 청년들이 간첩으로 몰렸고, 무자비한 고문과 협박 속에 허위 자백을 강요당했습니다.
이 가운데 송우석의 친구 식당 아주머니의 아들, 진우가 구속됩니다. 한때 귀엽게 보던 아이가 고문당한 채 감옥에 갇혀 있는 걸 보며, 송우석은 처음으로 자신이 ‘뭘 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고민은 곧 ‘각성’으로 이어집니다.
나는 이 장면들이 너무 뼈아팠습니다. 고문 장면은 직접적으로 묘사되진 않지만, 그 여운이 너무 커서 오히려 더 끔찍하게 다가옵니다. 국가가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법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무자비한 일을 벌이는지를 이 영화는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고, 지금도 유사한 일이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울컥했고, 동시에 분노했습니다. 단지 정의로운 이야기여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심과 공감이 있다면 외면할 수 없는 장면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송우석은 이제 변합니다. 돈보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 권력보다 양심이 앞서는 정의를 향해 나아갑니다. 이 각성은 고통에서 시작됐지만, 그것이 결국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이 되었습니다. 나는 이 변화가 진정한 ‘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캐릭터 발전을 넘어서, 한 인간이 어떻게 시대를 이끄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주제 3: 끝내 지켜야 할 신념은 무엇인가
법정 장면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입니다. 이 장면에서 나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봤습니다. 송우석은 '이것이 재판인가, 쇼인가'라고 묻습니다. 그 외침은 단지 영화 속 대사가 아니라, 80년대 한국 사회 전체를 향한 질문이었습니다. 법이 법답지 않았고, 법정이 정의의 공간이 아닌 연극 무대였던 그 시절. 송우석은 진실을 외칩니다.
그의 외침은 단지 피고인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나는 이 장면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실제로도 이 장면은 많은 관객들에게 감정의 클라이맥스를 선사합니다. 송강호의 연기력은 물론이고, 대사 하나하나가 현실을 찌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마지막 재판에서 송우석이 외치는 말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정의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그 외침은 단지 과거의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부당한 일 앞에서 침묵을 강요받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말입니다.
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바로 이 ‘신념’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아무리 약해 보여도, 그 신념 하나로 역사를 움직일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감수해야 할 대가. 그 모든 것이 송우석이라는 인물을 통해 집약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신념을 갖고 있는가? 부당한 현실 앞에서, 나 하나쯤이야 하며 물러서지 않는 용기가 있는가? 나는 여전히 그 물음에 망설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본 후, 적어도 그 질문을 회피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끝났지만, 질문은 계속된다
〈변호인〉은 법정 영화이자, 시대의 기록이며, 인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감동을 주기 위한 구성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순간’을 위한 준비물입니다. 나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 질문이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는, 지금 우리 사회도 여전히 선택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부당하게 해고되고, 누군가가 권력에 짓밟히고, 누군가가 목소리를 내다 외면당할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나요? 나 몰라라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변호인〉의 가장 큰 힘은 여기에 있습니다.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 그리고 미래에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지를 미리 묻는다는 점입니다. 영화는 끝났지만, 질문은 계속됩니다. 나는 아직도 그 질문에 완벽한 답을 내리지 못했지만, 이제는 최소한 회피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하고 있습니다.
송우석이라는 인물은 단지 노무현의 과거가 아닙니다. 그건 지금의 우리 안에 잠든 가능성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변호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 스스로의 변호인이 되어야 할 순간이 반드시 옵니다.
그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영화를 기억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