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실미도〉는 단순한 전쟁 영화가 아닙니다. 전쟁도, 액션도 그저 껍데기일 뿐, 이 영화의 핵심은 인간입니다. 그것도 국가에 의해 선택되고, 국가에 의해 버려진 인간들. 실미도 684부대는 실제 존재했던 특수 부대였습니다. 북파 공작이라는 명목으로 조직되었고, 대북 첩보 및 암살 작전을 위해 혹독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존재는 끝내 '불편한 진실'로 남겨졌고, 실미도 사건은 오랫동안 은폐되어 있었습니다. 2003년 이우철 감독이 그 진실을 영화로 끌어올렸고, 나는 그때 극장에서 처음 이 영화를 봤습니다. 그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실미도는 인간의 존엄, 국가의 책임, 명령과 복종의 구조가 만들어낸 파국을 그려냅니다. 전반적으로는 대중적인 스토리텔링을 택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 깔려 있는 윤리적 질문은 무겁고 날카롭습니다. 나는 이 영화를 단순히 ‘재미있는 영화’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내가 한국 현대사와 국가폭력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 영화 중 하나였습니다.
특히, 684부대가 겪은 처우와 마지막 선택을 보면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되뇌었습니다. 그들은 국가가 부르면 죽을 각오로 움직여야 했고, 필요 없어지자 버려졌습니다. 이토록 비극적인 구조 속에서, 인간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당시의 나는 분노했고, 지금도 여전히 이 영화를 떠올릴 때마다 먹먹한 기분이 듭니다.
실미도는 그렇게, 한 번 보고 끝날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반복해서 생각나고, 시대가 변할수록 그 의미가 깊어지는 작품입니다. 이제부터는 그 안에 담긴 세 가지 주제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려 합니다.

🎯 주제 1: 실화를 바탕으로 한 충격의 전개
〈실미도〉의 핵심은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이는 극적인 장치를 일부 과장했다고 해도, 뼈대 자체가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에서 엄청난 무게감을 가집니다. 실미도 684부대는 실제로 존재했으며, 영화는 이들이 어떻게 선발되고 어떤 훈련을 받았는지를 생생하게 재현합니다. 감독은 당시 군사기록과 생존자 증언을 바탕으로 가능한 한 사실에 가깝게 영화를 구성했으며, 이 사실감이 관객을 더욱 몰입하게 만듭니다.
나는 특히 이 영화가 ‘국가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명목 아래 사람을 어떻게 도구화하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684부대의 요원들은 대부분 전과자 출신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그들이었지만, 국가가 ‘특별 임무’를 준다는 말에 모든 것을 걸고 훈련에 임합니다. 그 열정과 충성은 진짜였습니다. 그런데, 그 진심을 국가가 짓밟습니다.
이 부분에서 내가 느낀 건, 영화가 말하는 ‘국가의 이중성’입니다. 겉으로는 애국과 명예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사람을 이용하고, 필요 없으면 버립니다. 이 잔인한 진실을 영화는 숨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면으로 돌파하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이들을 기억하고 있는가?’, ‘지금의 우리 사회는 이와 얼마나 다른가?’
이 영화가 충격적인 이유는, 허구가 아닌 현실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아프고, 더 깊게 박힙니다.

🎯 주제 2: 인물 간 갈등과 조직의 윤리적 파탄
〈실미도〉에서 가장 강하게 남는 인상은 '집단 내부의 갈등'입니다. 극한의 환경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하고, 어떻게 무너지는지 보여주는 장면들이 이 영화의 진정한 드라마입니다. 김강우(설경구), 최재현(안성기), 조중사(정재영), 강인찬(허준호) 등 중심 인물들의 심리 변화는 매우 입체적입니다. 처음엔 공통의 목표 아래 뭉쳤던 그들이 점점 분열되고, 의심하고, 서로를 해치게 되는 과정은 무서울 정도로 현실적입니다.
내가 인상 깊게 본 장면은 훈련 도중 일어나는 폭력과 권위의 문제입니다. 국가가 조직한 구조 속에서 소위 ‘명령’은 절대적입니다. 그 명령이 비인간적이어도, 폭력이 동반되어도, 정당화됩니다. 왜냐하면 '국가'가 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명령이 잘못되었을 때,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책임은 조직의 가장 약한 고리에게 돌아갑니다.
여기서 나는 현실과의 연결점을 느꼈습니다. 직장에서, 사회에서, ‘위에서 시킨 일’이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책임은 위로 올라가지 않고, 언제나 아래에서 끊깁니다. 영화 속 인물들이 느끼는 배신과 분노는, 단지 1970년대의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는 구조입니다.
영화는 이 점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인간성은 점점 파괴되고, 조직은 살아남기 위해 진실을 지우려 합니다. 결국, 684부대는 폭발하기에 이릅니다. 그것은 단순한 폭동이 아니라, 시스템이 만들어낸 절규이자 마지막 외침이었습니다.

🎯 주제 3: 역사의 책임은 누가 지는가
실미도의 마지막은 비극으로 끝납니다. 그들은 결국 서울로 향해 군 버스를 납치하고, 시민들에게까지 위협을 가하게 됩니다. 이 부분은 분명히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애국심'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이들이 민간인을 위협했다는 점은 비난받아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것마저도 그들의 잘못으로만 치부하지 않습니다. 왜 그들이 그렇게까지 갈 수밖에 없었는지, 그 절박함과 상실감, 그리고 복수심을 관객이 이해하도록 유도합니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며 '과연 진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작전을 지시한 자들은 누구였고, 그들은 어떤 책임을 졌는가? 역사는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언론도, 정부도, 대중도 잠시 관심을 가졌다가 금세 잊었습니다.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도, 많은 관객이 놀랐지만, 이후 우리는 다시 이 사건을 잊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됩니다. 책임지지 않는 권력,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방관하는 사회.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또 다른 ‘실미도’는 언제든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영화를 ‘과거의 영화’로만 두고 싶지 않습니다. 이건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답을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 ‘국가’라는 단어의 무게를 다시 묻다
〈실미도〉를 다 보고 난 후, 마음이 오래도록 무거웠습니다. 영화 자체가 잘 만들어졌느냐, 연출이 탁월하느냐는 차원의 문제를 넘어서, 이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멍하게 만들었습니다. 국가란 무엇일까요? 국민을 보호하는 존재인가요? 아니면 필요할 때만 불러내고 버리는 존재인가요?
영화 속 684부대원들은 분명히 국가를 믿었습니다. 그 믿음은 훈련을 견디게 하고, 죽음을 각오하게 만들었으며, 심지어 명령에 따라 목숨을 바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신뢰는 철저히 짓밟혔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묻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고 있는가?'
나는 이 질문이 계속 마음에 남습니다. 그리고 단지 684부대뿐만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은 늘 기억을 지우려 하고, 사람들은 그 기억을 대신 짊어집니다.
〈실미도〉는 영화 그 이상입니다. 역사에 대한 성찰이며, 사회에 대한 경고이고, 인간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 영화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적어도 ‘국가’라는 단어 앞에서 쉽게 입을 열 수 없을 겁니다. 나 역시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는 변하지 않았지만, 내가 변했기에, 이번에는 더 많은 것을 느낄 것 같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