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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속 여성 리더십·정체성의 혼란·피로 물든 독립운동, 영화 ‘암살’이 던지는 세 가지 질문

by 세리옹 2025.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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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목 1: 여성 저격수 안옥윤, 리더십의 경계를 무너뜨리다
소제목 2: 밀정의 정체성과 윤리, 염석진이라는 그림자
소제목 3: 역사의 피와 총성, ‘암살’이 재구성한 시대적 울림

일제강점기 속 여성 리더십·정체성의 혼란·피로 물든 독립운동, 영화 ‘암살’이 던지는 세 가지 질문
일제강점기 속 여성 리더십·정체성의 혼란·피로 물든 독립운동, 영화 ‘암살’이 던지는 세 가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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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는 것

영화 〈암살〉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마치 영화가 아니라 실제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본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물론, 영화적 상상력과 허구가 녹아들어 있겠지만, 193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독립군과 밀정, 친일파가 얽혀 있는 이 이야기는 유난히 현실감이 강했다. 역사 수업 시간에 배웠던 단어들이 — 임시정부, 독립운동, 친일, 밀정 — 캐릭터의 얼굴을 입고, 대사로 날아들고, 총소리와 함께 가슴을 치고 지나갔다. 나는 그 시대를 살지 않았지만, 영화가 던진 감정의 무게는 분명히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닿았다.

〈암살〉은 단순히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독립운동 영화”라는 수식어로 정의되기엔 너무나 다채로운 층위를 갖고 있다. 단순한 이분법적 구도 — 독립군은 정의롭고, 친일파는 악하다 — 를 따르지 않는다. 영화는 여러 명의 중심 인물을 두고, 그들이 왜 싸우는지, 왜 변절하는지, 그리고 그 선택 뒤에 어떤 감정이 있는지를 매우 입체적으로 풀어낸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단순히 “독립운동 영화”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영화”라고 느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전지현이 연기한 안옥윤이다. 한 여성이 리더가 되고, 동료들을 이끌고, 결정적인 순간에 방아쇠를 당긴다. 감정의 동요도 있지만, 그보다 앞선 것은 사명감이었다. 여성 캐릭터가 감성적인 도구로 소비되는 기존 전쟁 영화나 액션 영화들과는 다른 지점이었다. 나는 영화 속 안옥윤을 보며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모습도 겹쳐 보았다. ‘더 이상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라, 책임지고 싸우는 존재’로 변화한.

또 하나, 염석진이라는 인물의 존재는 영화 전체에 그림자처럼 깔려 있다. 그는 독립운동가로 위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일본 경찰의 밀정이다. 처음에는 관객도 그를 신뢰하게 만든다. 하지만 점점 밝혀지는 그의 본모습은 너무도 현실적이라 오히려 섬뜩하다. 나는 이 인물을 보며, ‘누군가의 변절은 늘 그렇게 합리적인 얼굴을 하고 찾아오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배신자지만, 동시에 시대가 만든 또 하나의 피해자일 수도 있다. 영화는 그것까지 포용한다.

〈암살〉은 그래서 단순히 '스펙터클한 영화'가 아니다. 물론 총격 장면이나 연출도 훌륭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날카롭게 다가오는 건 ‘누가 우리의 적인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가?’, ‘나는 내 신념을 지킬 수 있는가?’와 같은 윤리적 질문들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시대를 산 사람들의 선택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겸손함이 남는다. 그리고 동시에 묻게 된다. 지금 나는 어떤 신념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일제강점기 속 여성 리더십·정체성의 혼란·피로 물든 독립운동, 영화 ‘암살’이 던지는 세 가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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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성 저격수 안옥윤, 리더십의 경계를 무너뜨리다

〈암살〉은 안옥윤이라는 인물을 통해 여성 리더십의 새로운 서사를 펼쳐 보인다. 안옥윤은 단순한 조력자나 희생양이 아니다. 그녀는 중심에서 명령을 내리고, 판단하며, 결정을 실행하는 사람이다. 그것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전지현은 이 역할을 통해 기존의 스크린 속 ‘여성 캐릭터’에 대한 공식을 뒤엎는다. 더 이상 예쁘고 눈물 흘리는 존재가 아니라, 싸우는 사람이다. 행동하고 책임지는 사람이다.

나는 안옥윤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여성에게 기대했던 이미지는 왜 그렇게 한정적이었을까?” 대부분의 전쟁 영화나 시대극에서 여성은 남성의 감정을 자극하는 매개체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그녀는 전략가이며 전투자다. 총을 쥐고, 정확한 조준을 통해 적을 쓰러뜨린다. 그리고 동시에, 인간적인 고뇌도 가지고 있다. 고아로 자라온 그녀가 자신의 쌍둥이 자매와의 재회를 통해 복잡한 정체성을 마주할 때, 단순한 영웅 서사에서 벗어나 더 풍성한 감정을 이끌어낸다.

여기서 중요한 건 영화가 이 모든 것을 전지현의 스타성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의 대사, 행동, 눈빛 모두가 인물의 내면과 논리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그녀가 방아쇠를 당길 때, 관객은 단순한 총성이 아니라 ‘결심’의 무게를 듣는다. 나는 그런 순간들에서 여성 서사의 진정한 전환을 목격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영화 속 남성들이 그녀의 리더십을 따르는 방식이다. 조진웅이 연기한 속사포, 최덕문의 황덕삼 등은 모두 그녀를 중심으로 움직이며, 그녀의 판단을 존중한다. 이것이 바로 리더십의 본질 아닐까. 성별이 아닌, 능력과 책임의 무게로 얻어진 위치. 〈암살〉은 이를 아주 자연스럽게, 그러나 강력하게 그려냈다. 그리고 나는 이 영화에서 본 안옥윤이, 단순히 한 시절의 영웅을 넘어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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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밀정의 정체성과 윤리, 염석진이라는 그림자

〈암살〉의 진짜 긴장감은 겉으로 드러나는 총성보다 ‘염석진’이라는 인물의 내면에서 비롯된다. 그는 겉으로는 임시정부 요원이며,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우는 인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가 중반을 넘기면서 드러나는 그의 실체는 일본 경찰의 밀정. 그 배신의 깊이는 단순히 한 인물의 악행으로 치부되기엔 너무 무겁고, 너무 인간적이다.

이정재는 염석진을 단지 냉혹한 배신자가 아닌, 내부가 무너진 사람으로 연기한다. 그의 눈빛은 늘 불안하고, 말투는 건조하며, 감정 표현은 기계적이다. 나는 처음에 그가 왜 이렇게 감정이 없어 보일까 의아했지만, 그건 어쩌면 오래도록 자기 감정을 속이며 살아온 사람의 무표정이 아니었을까. ‘나는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기 위해 모든 생각과 감정을 닫아버린, 그런 상태.

영화 속 염석진은 단지 ‘변절자’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는 시스템 속에 갇힌 인간이다.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고, 그 길이 점점 자신을 좀먹어 결국엔 파멸에 이른다. 이정재는 이 캐릭터를 놀랍도록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적인 고통도 함께 담아낸다. 나는 이런 복합적인 인물이야말로 영화의 진짜 심장이라고 생각한다. 악역이지만 납득 가능한 악역, 인간이지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인간. 그 양가성은 보는 내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그 불편함은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도 쉽게 가시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영화의 후반, 염석진이 과거를 숨기고 교수로 살아가며 다시 한 번 가면을 쓰는 장면은 소름 끼쳤다. 그는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해 단 한 마디의 반성도, 책임도 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쌓아온 권위 속에 숨어 있는 모습에서 나는 현실의 수많은 ‘염석진’들을 떠올렸다. 시대는 변했지만, 이름을 바꾸고 얼굴만 바꾼 채 살아가는 친일의 유산들은 여전히 사회 곳곳에 존재하지 않는가.

〈암살〉은 염석진이라는 인물을 통해 ‘누가 진짜 적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단순히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늘을 사는 우리 역시, 불의한 시대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누군가는 의로운 얼굴로 배신을 감추고, 누군가는 어설퍼도 정직하게 살아간다. 염석진은 그 경계에 선 자였고, 결국 자신이 선택한 길에 고립된 자였다. 나는 그를 증오하면서도, 끝내 연민하게 된다. 그게 인간의 복잡한 감정이다. 그리고 〈암살〉은 그런 복잡함까지 품고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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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역사의 피와 총성, ‘암살’이 재구성한 시대적 울림

〈암살〉은 액션 장르이면서 동시에 시대극이다. 영화는 대규모 총격전, 추격전, 폭발 장면 등에서 놀라운 완성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모든 기술적 연출 위에 흐르는 건 결국 ‘역사’다. 이 영화는 총알의 궤적을 따라가는 동시에, 1930년대 조선이라는 시대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이 지점이 이 영화의 가장 위대한 성취라고 본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역사의 피해자이자 행위자다. 안옥윤은 고아 출신의 독립군 저격수이고, 속사포는 총알로 인생을 버텨온 병사다. 그들이 싸우는 대상은 단지 일본 제국주의만이 아니라, 그 체제에 협력한 ‘강인국’ 같은 친일파, 그리고 민족을 배신한 밀정 염석진이다. 나는 이들이 겨눈 총이 단지 물리적 적이 아닌, 구조적 폭력과 시대의 부조리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깊은 울림을 느꼈다.

〈암살〉은 단지 ‘독립군이 나쁜 놈들을 죽이는 통쾌한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묻는다. 누가 독립운동가였는가? 그들은 어떤 희생을 감내했는가? 왜 어떤 이들은 끝까지 싸웠고, 어떤 이들은 변절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고 있는가? 나는 영화를 보면서 단순히 박수를 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미안했고, 부끄러웠고, 다시는 잊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마카오에서 벌어지는 총격전이다. 이 장면은 마치 서부극을 연상케 하는 긴장감 속에서도, 인물들의 사연이 복합적으로 엉켜 있다. 총 한 방에 담긴 의미는 단지 생사의 경계가 아니라, 역사의 무게이기도 하다. 죽어가는 인물들도, 살아남는 인물들도 모두 비극적이다. 그 비극이 쌓여 오늘의 우리를 만든 것이다.

〈암살〉은 그래서 단지 1930년대 이야기만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땅에도, 그 시대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름만 바뀐 권력자, 처벌받지 않은 반역자, 잊혀진 독립운동가. 나는 이 영화를 보며 느꼈다. "기억하지 않으면,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그래서 〈암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저항이고, 하나의 기억투쟁이다.

 

일제강점기 속 여성 리더십·정체성의 혼란·피로 물든 독립운동, 영화 ‘암살’이 던지는 세 가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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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책임, 그리고 지금 우리의 선택

영화 〈암살〉이 끝나고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긴 여운이 가슴을 누르고 있었고, 눈앞에는 영화 속 마지막 장면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한 시대를 살다간 이들의 목소리가 허공에 사라지지 않도록, 그들이 겪은 고통과 선택이 단지 스크린 안에 갇히지 않도록, 우리는 이 영화를 그저 “잘 만든 영화”라고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기억의 윤리'에 대해 다시금 고민했다. 그들이 살아남으려 애쓴 이유는 단지 생존이 아니라, 우리의 오늘을 위해서였다는 것. 우리는 그 대가를 치르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그 값을 목숨으로 냈다. 그 기억을 잊는 순간, 우리는 그 희생을 배신하는 것이다. 염석진은 바로 그 기억을 외면한 자의 말로를 보여준다. 살아남았지만,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사람. 그게 진짜 죽음 아닐까.

〈암살〉이 지금 시대에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점점 그 시절을 ‘과거’로만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100년 전의 이야기라며 무관심해지고, 독립운동이 마치 영화나 드라마 속 ‘멋진 서사’로만 남게 되는 순간, 진짜 역사의식은 사라진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다시금 다짐했다. 나의 무관심은 또 하나의 침묵이며, 침묵은 공범일 수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암살〉은 단지 “보는 영화”가 아니라 “기억하는 영화”가 되어야 한다. 누군가는 그 시대에 저항했고, 누군가는 편승했으며, 누군가는 침묵했다. 그 셋 중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다시 반복된 역사의 뒷면에 서게 될 것이다. 나는 오늘, 이 영화를 통해 나의 자리를 다시 고민해본다.

그리고 간절히 바라본다. 언젠가 그 시대의 이름 없는 이들의 피와 눈물이, 완전히 기억되고 제대로 평가받는 날이 오기를. 그것이 진짜 ‘독립’이며, 우리가 해야 할 ‘책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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