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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시민·기자의 시선·광주의 진실, 영화 ‘택시운전사’

by 세리옹 2025.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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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범한 가장, 역사의 증인이 되다
2: 독일 기자의 시선으로 본 5·18
3: 영화가 말하는 진실과 기억의 책임

평범한 시민·기자의 시선·광주의 진실, 영화 ‘택시운전사’
평범한 시민·기자의 시선·광주의 진실, 영화 ‘택시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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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택시운전사’가 던진 묵직한 질문

나는 처음 ‘택시운전사’를 봤을 때, 그저 감동적인 실화 영화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났을 땐, 말문이 막혔다. 그건 단순한 영화가 아니었다. 마치 내가 광주의 한복판에 있었던 것처럼 숨이 막혔고, 이 이야기의 일부가 되어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시작이, 너무도 평범한 한 택시기사로부터 출발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놀라게 했다.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출발점은 거창하지 않다. 서울에서 택시를 몰며 겨우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한 가장, 김만섭(송강호)의 이야기다. 그는 외국인을 광주까지 태워주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아무 정보도 없이 일을 수락하고, 그렇게 역사의 한복판에 뛰어든다. 영화는 이 ‘평범함’을 무기로 삼는다. 아무런 정치적 의도도, 역사적 사명감도 없던 인물이 진실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체감하면서 변화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이 영화가 그렇게 강한 울림을 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영웅이 아닌 사람, 위대한 사상이 아닌 보통의 일상. 그 속에서 피어난 정의감이야말로 진짜 변화의 씨앗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영화 속 김만섭은 처음에는 “데모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라고 말하던 인물이지만, 점점 말없이 손을 내밀고, 위험을 무릅쓴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변화의 순간순간이 너무도 진솔하게 그려진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우리 주변에도 김만섭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게 됐다. 정치적 발언을 피하고, 뉴스에 무심하고, 그저 살아남기 위해 오늘 하루를 버텨내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 역시, 진실을 마주했을 때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는 희망. 그것이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진짜 메시지 같았다.

이제부터는 이 작품을 세 가지 색다른 관점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택시기사라는 인물의 변화, 외신기자가 본 대한민국, 그리고 영화를 통해 다시 기억해야 할 진실과 그 책임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평범한 시민·기자의 시선·광주의 진실, 영화 ‘택시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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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가장, 역사의 증인이 되다

김만섭은 특별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생계 때문에 외국인을 태워 광주로 가는 일을 수락했을 뿐이다. 영화는 그를 굉장히 평범하게, 오히려 소심하고 이기적인 모습까지 담담히 보여준다. 딸아이를 키우며 하루하루 택시를 몰아 겨우 먹고사는 그는 당시 많은 서민들이 그러했듯이 ‘정치’나 ‘민주화’에 무관심하다.

하지만 광주에 들어선 순간, 그의 세계는 무너진다. 평온해야 할 도시는 계엄군의 무차별한 폭력으로 피로 물들고, 시민들은 목숨을 걸고 자유를 외치고 있다. 만섭은 처음엔 무서워한다. 도망치려 한다. 자신이 이 일에 끼어드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조차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그는 남는다.

나는 이 지점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처음엔 두렵다. 나 하나쯤 빠져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진실은 너무도 선명해서 외면할 수 없다. 김만섭이 시민의 시체를 싣고 가는 트럭을 보고, 거리에서 울부짖는 어머니를 보며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은 눈물 없이는 보기 힘들었다.

이 인물의 변화는 억지스럽지 않다. 아주 자연스럽고, 점진적이며, 인간적인 흐름으로 묘사된다. 송강호는 이 복잡한 내면을 정말 탁월하게 연기한다. 처음엔 거칠고 투박하지만, 점점 조심스럽고 다정해지는 그의 모습에 나는 몇 번이나 울컥했다. 김만섭은 전형적인 ‘히어로’는 아니지만, 진짜 용기를 보여준 사람이다.

결국 그는 서울로 돌아와서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독일 기자를 태우고 다시 광주로 향하려 하지만, 이미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 갇혀버린다. 그 장면에서 나는 마음속 깊은 울분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꼈다. 우리 사회가 그 ‘증인’들을 얼마나 외면해왔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평범한 시민·기자의 시선·광주의 진실, 영화 ‘택시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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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기자의 시선으로 본 5·18

‘택시운전사’는 실제 인물 피터(Peter, 영화에서는 위르겐 힌츠페터)라는 독일 기자의 시선을 따라간다. 이 시점이 영화의 중요한 강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잊고 있던 비극을, 외부의 시선을 통해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효과.

힌츠페터는 기자로서의 사명감 하나로 위험한 광주행을 감행한다. 그는 단순히 외국인 특파원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진실 앞에서 행동하는 사람이다. 영화는 그의 열정과 두려움, 그리고 고뇌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장면은 힌츠페터가 카메라를 들고 계엄군의 폭력을 찍던 순간이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학살에도 불구하고 그는 멈추지 않는다. 그 사명이, 그 기록이 언젠가 이 진실을 세상에 알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만섭과 힌츠페터의 조합은 정말 절묘하다. 둘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왔고, 서로를 처음엔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두 사람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된다. 진실을 알리는 것. 목격한 것을 외면하지 않는 것.

개인적으로 이 외신 기자의 존재는 우리 사회가 놓치기 쉬운 ‘바깥의 시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종종 내 안의 진실만 보려 한다. 하지만 외부의 시선이야말로 때론 더 객관적이고, 더 치열하며, 더 정의로울 수 있다. 힌츠페터가 있었기에, 광주의 진실은 세계로 전해질 수 있었다.

이 영화는 그래서 단순한 국내영화가 아니다. 국제적 연대, 언론의 책임, 그리고 한 개인의 양심이 어떻게 역사를 바꿀 수 있는지를 말하는 영화다. 나는 힌츠페터가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장면에서, 무언가 깊은 감사를 느꼈다. ‘이 사람 덕분에 우리가 알게 되었다’는 그 감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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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말하는 진실과 기억의 책임

‘택시운전사’는 5·18을 정면으로 다룬 몇 안 되는 상업영화 중 하나다. 그 점에서 이미 의미가 깊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정말 특별한 이유는, 기억의 책임을 묻기 때문이다. 단순히 눈물 흘리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이 이야기를 외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되묻는다.

김만섭은 당시에도, 지금도 이름 없는 시민이다. 힌츠페터는 역사 속 인물이지만, 그의 기록은 몇 년이 지나서야 인정받았다. 영화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기록되지 못한 진실’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진실을 다시 꺼내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오늘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책임임을 일깨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영화를 본 후 5·18에 대해 더 많이 검색하고, 책을 찾아보고, 영상을 찾아봤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진 그저 시험 공부할 때 외웠던 역사적 사건으로만 기억했었다. 그런데 영화는 내게 질문했다. “그날,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나는 이 영화가 우리에게 단지 과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거울을 들이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어떤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가? 지금 우리는 어떤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는가?

‘택시운전사’는 단지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이고, 진실이고,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는 것은 영화의 몫이 아니라 관객의 몫이다.

평범한 시민·기자의 시선·광주의 진실, 영화 ‘택시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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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용기

‘택시운전사’를 본 이후, 나는 자주 그 마지막 장면을 떠올린다. 힌츠페터는 김만섭을 다시 찾지 못했다. 만섭도, 힌츠페터도 서로의 이름조차 모른 채 각자의 길을 갔다. 하지만 그 짧은 만남이 바꾼 역사의 조각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이 영화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은 ‘기억’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잊는다. 특히 고통스러운 일일수록 더 빨리 지워버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고통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고통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자신의 위험도 감수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다. 잊지 않는 것. 기억하는 것. 때로는 영화 한 편이 그 기억을 이끌어내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택시운전사’는 그런 영화다.

이제 나는 ‘택시운전사’를 단순한 감동 실화 영화로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책임의 영화, 기억의 영화,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다.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의 목격자 중 한 명으로서, 앞으로도 이 기억을 내 삶 속에 오래 간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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