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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vs 고전 유럽 화가 (피카소, 브뤼겔, 호크니)

by 세리옹 2025.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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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는 다르지만, 나에게 질문을 던진 세 화가

“예술은 시대를 반영한다.” 이 말은 수없이 들었지만, 실감한 건 그림 앞에 섰을 때였다. 같은 유럽이라는 배경 속에서, 시대가 달라졌다는 이유 하나로 예술의 언어가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눈으로 보았을 때. 고전 화가의 엄격한 구도와 미학, 현대 화가의 실험성과 파격. 전혀 다른 세기를 살았지만, 그들이 그림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질문들은 언제나 나에게 도달해왔다.

 

이번 글에서 이야기할 세 화가, 브뤼겔, 피카소, 호크니는 시대와 양식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당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는 점에서 연결된다. 피터 브뤼겔은 16세기 농민의 일상을 통해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꿰뚫었고, 피카소는 20세기 전쟁과 파괴 속에서도 새로운 시각 언어를 개척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색과 시선, 그리고 기술로 다시 예술의 의미를 묻고 있다.

 

나는 이 세 사람의 그림을 볼 때마다 ‘내가 예술을 왜 보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단순히 미적인 만족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림 속에 담긴 시대의 감정, 화가의 시선, 그리고 그들이 던지는 질문에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미술관에 갈 때마다 느끼는 그 감정,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울림. 그것이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글은 단순히 ‘고전과 현대’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 사람을 통해 나는 예술이 어떻게 시대를 넘어 사람의 내면을 건드릴 수 있는지를 느꼈고, 그 과정을 함께 나누고 싶다. 세 사람 모두 나에게 ‘다르게 본다는 것’의 중요함을 일깨워줬다.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1. 피터 브뤼겔 – 일상 속에서 진실을 찾은 화가

피터 브뤼겔은 르네상스 말기 북유럽 회화의 거장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전 화가 중 한 명이다. 그의 그림을 보면 마치 수백 년 전의 거대한 파노라마를 바라보는 기분이 든다. 복잡하게 얽힌 인물들, 섬세한 묘사, 그 속에 담긴 풍자와 통찰. 그는 단순히 현실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 숨겨진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대표작 <바벨탑>, <농민의 결혼식>, <눈 속의 사냥꾼> 등을 보면, 당시 유럽 사회의 계급, 신앙, 자연, 노동 등 다양한 요소들이 그림 하나에 집약되어 있다. 나는 그의 작품이 단순한 풍경이나 인물 묘사를 넘어 ‘사회에 대한 기록’처럼 느껴졌다. 특히 <눈 속의 사냥꾼>을 처음 봤을 땐, 그 조용한 눈밭 속에 깃든 인간의 고단함과 아름다움이 마음을 울렸다.

브뤼겔은 고전 화가지만, 그 시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위대한 영웅이나 신화를 그리기보다, 우리처럼 ‘보통 사람’들의 삶을 주제로 삼았다. 그래서 그의 그림 앞에 서면 시간의 간극이 줄어드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땐 이랬구나”가 아니라, “지금도 다르지 않다”는 감각. 나는 그가 그린 시대를 보면서 오히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시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고전 화가 중에서도 브뤼겔은 특히 ‘정서적 거리’가 가까운 작가다. 화려함보다 진심, 이상보다 현실. 그의 그림은 미화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나는 그런 그림 앞에서 오히려 위로받는다. 꾸며지지 않은 진실이 주는 감동이란, 언제나 가장 오래 남는다.

현대 vs 고전 유럽 화가 (피카소, 브뤼겔, 호크니)
현대 vs 고전 유럽 화가 (피카소, 브뤼겔, 호크니)


2. 파블로 피카소 – 형식 파괴 속에서 감정을 발명한 화가

피카소는 단지 유명한 화가가 아니라, 20세기 예술의 문법을 완전히 바꿔놓은 혁신가였다. 나는 처음 그의 그림을 봤을 때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형태는 무너졌고, 인물은 분해되었으며, 색은 불균형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그림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형태를 알아보지 못해도 감정은 전해졌기 때문이다.

 

<게르니카>는 그중에서도 내게 가장 큰 충격을 준 작품이다. 전쟁의 비극을 형식 없이, 하지만 어떤 그림보다도 강하게 표현한 그 그림은 당시의 정치적 분노와 인간적 절망을 극도로 추상화시킨 동시에 날것 그대로 담아냈다.

피카소는 단지 추상화한 것이 아니다. 그는 ‘어떻게 느끼는가’에 집중했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기존의 시각적 언어를 깨뜨렸다.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블루/로즈 시대 등 그는 계속해서 스타일을 바꿨고, 그 변화의 과정 자체가 예술이었다. 나는 그 도전과 실험이야말로 진짜 예술가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의 그림은 ‘예쁘다’기보다는 ‘생각하게 만든다’. 피카소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느끼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그의 그림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예술을 보는 내 태도 자체를 바꾸는 경험이었다.

나는 피카소를 통해 ‘정답 없는 그림’도, ‘불편한 아름다움’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단순히 형식을 파괴한 게 아니라, 예술의 감정적 지형도를 새로 그려낸 사람이다. 그의 그림은 늘 불완전하고 혼란스럽지만, 그래서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을 느낀다.

현대 vs 고전 유럽 화가 (피카소, 브뤼겔, 호크니)
현대 vs 고전 유럽 화가 (피카소, 브뤼겔, 호크니)


3. 데이비드 호크니 – 디지털 시대의 색으로 그리는 감정

데이비드 호크니는 내가 가장 최근에 빠진 현대 화가다. 처음엔 ‘밝은 색을 쓰는 현대 작가’ 정도로만 알았다. 하지만 작품을 계속 보다 보면, 그 색 안에 담긴 정서와 시선이 얼마나 깊고 따뜻한지 알게 된다. 그는 색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법을 가진 작가다.

호크니는 회화뿐 아니라 사진 콜라주, 아이패드 드로잉까지 다양한 매체로 실험하며 현대예술의 확장성을 보여준다. 특히 <Bigger Splash>나 <iPad Drawings> 같은 시리즈는 밝고 선명한 색감 속에 정돈된 외로움이 있다. 나는 그 절제된 감정에 마음이 끌린다.

그가 단순히 시각적 효과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감정이 어떻게 표현되는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이 간다. 스마트폰, SNS, 디지털 환경 속에서의 인간관계… 그의 그림은 겉으론 밝지만, 그 속엔 현대인의 고립감이 스며 있다.

 

나는 호크니의 작품 앞에서 ‘색이 이렇게 고요할 수도 있구나’를 처음 느꼈다. 고전 화가들과 달리, 그는 거창한 주제를 다루지 않는다. 대신 일상적인 수영장, 창밖 풍경, 길거리 사람들을 통해 우리 삶을 세심하게 관찰한다. 그리고 그 사소함이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 더 와닿는다.

 

그는 내게 ‘현대 미술은 멀지 않다’는 감각을 주었다. 스마트폰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전시하는 그를 보며 예술이 꼭 아날로그여야만 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세 시대, 세 시선, 그리고 지금의 나

브뤼겔, 피카소, 호크니. 이 세 사람은 너무도 다르고, 시대도 방식도 전혀 다르지만, 내게는 모두 ‘지금 여기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화가’들이다. 나는 이들의 그림을 보며 예술이 결코 과거의 유산이 아니고, 현재를 살아가는 감정의 언어임을 느낀다.

 

브뤼겔은 나에게 인간과 사회를 관찰하는 시선을, 피카소는 기존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용기를, 호크니는 감정과 기술의 접점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감각을 주었다. 나는 그들에게서 배웠고, 지금도 배우고 있다.

예술을 좋아하게 되면서 알게 된 가장 큰 진실은, “예술은 보는 사람이 완성한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내 감정, 기억, 시선이 이 그림들을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한다. 고전은 고전대로, 현대는 현대대로, 서로 다른 언어로 나에게 말을 건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받아 적고 싶어졌다.

 

지금의 나는 브뤼겔의 눈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피카소의 손끝으로 내 감정을 탐색하며, 호크니의 색으로 삶을 표현하고 싶다. 예술은 시대를 초월해 인간을 이해하는 도구다. 이 세 화가를 통해 나는 예술이란 결국 ‘사람을 보고, 느끼고, 다시 표현하는 일’이라는 단순한 진실을 다시 한 번 믿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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