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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의 이중생활, 감정의 균열, 그리고 탈출의 몸부림

by 세리옹 2025.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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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킬러와 가장, 두 얼굴 사이에서 흔들리는 남자
  2. 감정 없는 삶에 들어온 온기, 그 파장의 시작
  3. 자유를 향한 움직임, 그러나 끝은 비극인가 해방인가

회사원의 이중생활, 감정의 균열, 그리고 탈출의 몸부
회사원의 이중생활, 감정의 균열, 그리고 탈출의 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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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영화 <회사원>은 내가 예전에 꿈꾸던 ‘직장인 판타지’의 정반대편에 있는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 주인공은 말 그대로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다. 양복을 입고 출근하고, 동료들과 밥을 먹고, 사무실에 앉아 보고서를 읽는 그 모습만 보면 정말 평범한 회사원 같다. 그런데 문제는 그 회사가 ‘살인 청부’를 업으로 삼는 곳이라는 데 있다. 그리고 그가 맡은 일은 바로 그 살인을 직접 실행하는 ‘직무’라는 것. 어쩌면 영화 <회사원>은 그렇게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우리 모두가 현실 속에서 얼마나 무기계처럼 살아가고 있는지를 은유하는 작품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영화의 출발점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흔히 킬러를 다룬 영화들은 피와 폭력으로 시작하지만, <회사원>은 너무도 차분하고 일상적으로 이야기를 펼쳐간다. 킬러조차도 조직에서의 평가를 걱정하고, 후배를 챙기고, 회식에서 눈치를 본다. 그러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살인을 수행하고, 일처럼 처리한다. 나는 이 설정이 섬뜩하면서도 기묘하게 현실적이라고 느꼈다. 현실에서 우리가 느끼는 일상적 피로, 감정의 고갈, 기계적인 반복… 그런 것들이 아주 과장된 형태로 반영된 세계. 그래서 영화는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오히려 더 현실적이다.

소지섭이 연기한 지형도라는 인물은 외면적으로는 완벽하다. 일도 잘하고, 말도 없고, 조직 내 신망도 높다. 하지만 나는 영화를 보면서 그의 내면이 얼마나 무너져 있었는지, 그리고 그 균열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보는 데서 가장 큰 몰입을 느꼈다. 그는 처음부터 흔들리는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도 단단하게 시스템에 적응한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한 여자를 만나고, 사람과 감정을 느끼고, 평범한 삶을 상상하게 되면서부터 모든 것이 변한다. 나는 이 과정이 너무 현실 같아서 오히려 먹먹했다.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모른 채, 매일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그 루틴에 적응해버린 나날들 속에서 갑자기 ‘감정’이라는 게 들어왔을 때, 우리는 그 감정을 지킬 수 있을까? 혹은 그것을 향해 걸어갈 용기가 있을까? 나는 지형도의 망설임과 분노, 회피와 욕망이 모두 내 안에도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사원>은 그렇게 말한다. 우리는 모두 어떤 의미에선 ‘회사원 킬러’일지도 모른다. 살기 위해 타협하고, 의심을 묻어두고, 감정을 접고 사는 존재들. 그런데 그걸 멈추고 싶어졌을 때, 정말 멈출 수 있을까? 그때가 바로 영화의 시작점이 된다. 그리고 나는 그 시작점에서부터 끝까지, 지형도의 마음을 따라가며 나 자신을 보게 됐다.

회사원의 이중생활, 감정의 균열, 그리고 탈출의 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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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킬러와 가장, 두 얼굴 사이에서 흔들리는 남자

지형도라는 캐릭터의 가장 큰 매력은 이중성이다. 그는 킬러이면서도 가장이고, 냉정한 프로이면서도 따뜻한 내면을 숨기고 있다. 이중성은 드라마 속 클리셰일 수도 있지만, <회사원>에서는 이중성이 곧 ‘존재의 갈등’으로 표현된다. 나는 이 지점이 이 영화의 서사를 견고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그는 오랜 시간 아무 감정 없이 살인을 해왔다. 그것이 직업이었고, 생존 방식이었고, 신념이라기보다는 습관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그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선을 지켜왔다. 이유 없는 살인을 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으며, 조직 내 규율을 지켜가며 살아왔다. 나는 이 모습이 ‘현대 사회에서의 직장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조직에 충성하면서도 스스로를 지우고, 누구보다 효율적으로, 말없이 시스템 속 부속품처럼 살아가는 모습.

하지만 지형도는 ‘단지’ 킬러가 아니다. 그는 조직의 시스템 속에서도 한 인간으로서 살아남으려 애쓴다. 동료를 챙기고, 불필요한 폭력을 피하려 하고, 심지어는 조직을 믿는다. 나는 이런 모습에서 그가 단지 ‘냉혹한 직업인’이 아니라, 그 안에서 무너져가는 인간성의 마지막 끈을 부여잡고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그가 우연히 만난 여자, 유미연(이미연 분)은 그런 그의 내면을 자극하는 존재다. 그녀는 지극히 평범하고, 지극히 따뜻하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고통에 공감하며, 작은 정성에도 감사를 표현한다. 나는 이 캐릭터가 다소 전형적으로 보일 수 있어도, 지형도라는 인물에게는 충격적일 정도로 새로운 세계라고 생각했다.

그녀를 통해 지형도는 자신이 지금까지 ‘감정을 죽이고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처음에는 혼란스럽고, 불편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그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희망을 키워간다. 킬러가 아니라, 진짜 회사원으로, 그리고 한 가정의 남편이자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 나는 이 순간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느꼈다. 사람은 누구나 평범함을 꿈꾼다. 오히려 너무 극단에 닿아본 사람일수록, 그 평범함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히 느낀다.

회사원의 이중생활, 감정의 균열, 그리고 탈출의 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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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감정 없는 삶에 들어온 온기, 그 파장의 시작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을 울리는 건, 지형도의 내면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가 결국은 거대한 파장으로 번져간다는 점이다. 단지 여자 하나 만났다고 킬러가 변한다? 너무 단순한 서사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변화를 가능하게 한 건 단지 ‘사랑’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것 자체의 복원이었다고 본다.

지형도는 처음부터 감정이 없었던 사람이 아니다. 감정을 묻고, 밀어두고, 지우고 살았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그런 감정의 절제 속에서 살아간다. 회사에서 웃지만 마음은 시큰하고, 가족과 함께 있지만 외로움은 계속되고.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 ‘약하다’고 느껴지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점점 더 무디게 만든다.

그런데 <회사원>에서의 ‘온기’는 아주 작은 계기로 시작된다. 미연이 건넨 말 한 마디, 아이의 해맑은 웃음, 평범한 식사 한 끼. 이런 것들이 지형도의 삶에 균열을 만들고, 결국에는 그를 변화시킨다. 나는 이 점이 굉장히 시적인 연출이라고 느꼈다. 인간은 거대한 외부의 힘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무너지기도 하고,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단순한 ‘사랑’의 감정이 아니다.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는지, 사람처럼 살아보지 못했는지를 깨닫는 과정이다. 나는 지형도가 미연을 바라볼 때 느끼는 ‘흠칫 놀람’ 같은 감정이 너무 와닿았다. 사랑이 아니라, 질투 섞인 동경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감정을 드러내며 살아가고,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데서 오는 슬픔.

그래서 그는 조직을 벗어나려 한다. 평범한 삶을 꿈꾸고, 총을 내려놓고 싶어 한다. 나는 이 장면들을 보면서, 그가 비로소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고 느꼈다. 폭력으로부터 멀어지고, 감정과 사랑에 다가서려는 사람. 하지만 이 영화는 냉정하다. 그런 감정이 ‘허용되지 않는 세계’이기 때문에, 이 변화는 필연적으로 비극으로 향한다.

회사원의 이중생활, 감정의 균열, 그리고 탈출의 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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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유를 향한 움직임, 그러나 끝은 비극인가 해방인가

지형도는 결국 결심한다. 조직을 떠나고, 사람으로 돌아오겠다고. 그리고 그 선택은 엄청난 대가를 동반한다. 동료의 죽음, 배신, 추격, 그리고 끝없는 피의 연쇄. 나는 이 부분에서 <회사원>이 가진 가장 냉혹한 질문과 마주했다.
“사람으로 돌아가려는 선택은, 언제나 가능한가?”

그는 총을 내려놓고 싶었지만, 세상은 그에게 그렇게 단순하게 허락하지 않는다. 이미 너무 많은 피를 묻혔고, 너무 많은 증오를 불러왔다. 나는 이 부분이 너무 현실적이라고 느꼈다. 인간은 변화할 수 있지만, 세상은 그 변화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과거는 따라오고, 누군가는 잊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지형도의 마지막 행동, 그리고 그의 선택을 비극이라기보다는 해방의 의지라고 해석하고 싶다. 그가 끝까지 사랑을 지키려 하고, 감정을 지우지 않으려 한 것. 그게 바로 이 영화의 유일한 희망이고, 그래서 그 결말이 더 가슴 아프다.

회사원의 이중생활, 감정의 균열, 그리고 탈출의 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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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회사원>이라는 제목은 아이러니하다. 너무 평범하고, 너무 익숙한 단어다. 하지만 영화는 그 단어 안에 숨겨진 삶의 무게, 시스템의 폭력, 감정의 억눌림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우리가 진짜 회사원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됐다.

소지섭은 이 영화를 통해 ‘멋있는 남자’가 아니라, ‘고장난 남자’를 연기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누구보다 진실했고, 눈빛 하나에 수많은 말이 담겨 있었다. 그 침묵은 그냥 조용한 게 아니라, 말하지 못한 삶의 고통이 응축된 것이었다.

나는 이 영화를 추천하면서 한 가지 강조하고 싶다.
이건 단순한 킬러 액션 영화가 아니다.
이건 ‘사람처럼 살고 싶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그가 끝내 얻지 못했던 자유, 우리가 대신 이뤄줄 수 있을까.
혹은 우리도 그처럼 끝없는 회사원 킬러의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영화를 본다는 건, 어쩌면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일이다.
그리고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회사원>은 충분히 가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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