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갈 때마다 나만의 기준이 있다면 ‘그 도시에서 미술관은 꼭 간다’는 거다. 맛집이나 쇼핑도 좋지만, 미술관에 들르면 그 도시가 가진 정서나 분위기를 더 깊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유럽은 예술의 뿌리가 깊은 곳이라 그런지, 크고 작은 미술관이 도심 곳곳에 숨어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상상 이상으로 감동적인 작품들이 숨어 있다.
2025년엔 유럽 여행을 계획 중인데, 이번에는 단순히 유명한 미술관이 아닌, 내가 정말 인상 깊게 본 작품을 중심으로 소개해보려고 한다.
이번 글에서는 모네의 수련 연작이 있는 프랑스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 세잔의 정적인 정물화와 풍경을 만날 수 있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 그리고 달리의 광기와 상상력이 가득한 스페인 피게레스의 ‘달리 극장 미술관’ 이 세 곳을 정리해 보려 한다. 단순히 사진 몇 장 찍고 나오는 미술관이 아니라, 그곳에서 '내가 왜 예술을 좋아하는지'를 다시 느끼게 해줬던 공간들이다.
모네의 오랑주리 미술관: 수련 앞에 멈춰선 시간
파리에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은 루브르처럼 웅장하지도 않고, 오르세처럼 복잡하지도 않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프랑스 여행 중 가장 감동을 받았던 곳이다. 이유는 단 하나, 클로드 모네의 ‘수련(Nymphéas)’ 시리즈 때문이다.
오랑주리 미술관의 하이라이트는 지하 전시관인데, 커다란 타원형 전시실에 수련 그림들이 파노라마처럼 걸려 있다. 처음 들어갔을 때 솔직히 울컥했다. 평면으로만 보던 모네의 수련이 벽 전체를 감싸고 있으니, 그림이라기보단 하나의 세계 안으로 들어간 기분이었다. 빛이 흐르는 듯한 붓질, 색채의 겹겹이 쌓인 농담, 그리고 아무 말도 필요 없게 만드는 정적.
사람마다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다르겠지만, 나에겐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아무 말 없이 수련 앞에 앉아 있었던 시간이 오래도록 남는다. 모네가 이 그림들을 그릴 당시 백내장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흐릿하고 몽환적인 그 터치가 더 와닿았다. 그는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빛을 그렸고, 그 안에서 평온함을 찾았다.
이 미술관은 입장료도 저렴하고 규모도 작지만, 예술이 얼마나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오르세 옆에 위치해 있으니 꼭 둘러보시길 추천하고 싶다.

세잔의 에르미타주 미술관: 고요함 속에 숨어 있는 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은 규모 면에서 유럽 내에서도 손꼽히는 거대한 미술관이다. 그런데 그 웅장한 공간 속에서, 나는 세잔의 정물화를 마주했을 때 가장 오래 발걸음을 멈췄다.
세잔은 언뜻 보면 정적인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 사과 몇 개, 병, 책 같은 단순한 정물들이 주로 나오고, 색감도 모네나 르누아르처럼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그의 그림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구성 자체가 아주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다는 걸 가까이서 보면 알 수 있다.
에르미타주에는 세잔의 대표작 중 하나인 '사과와 병이 있는 정물'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사과 하나, 그 옆에 놓인 병, 그리고 테이블의 각도까지 모든 게 아주 미세하게 기울어져 있다. 처음엔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데, 계속 보면 그 구도 속에서 작가의 집중력과 완벽주의가 느껴진다.
세잔은 입체파의 아버지라 불리기도 하는데, 나는 그보다 ‘관찰의 대가’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냥 사과 하나를 그리는 데도 그 안의 구조와 색의 조화를 끝없이 고민한 사람. 에르미타주의 화려한 금장 천장 아래에서, 조용히 그런 세잔의 세계에 빠져드는 경험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러시아라는 거리적 부담이 있지만, 세잔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가볼 만한 미술관이다. 이곳은 예술에 진심인 사람들만이 주는 에너지로 가득하다.

달리의 피게레스 극장 미술관: 상상이 현실을 뒤엎는 공간
달리 미술관은 정말 별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처음 갔을 땐 조금 정신이 없었다. 스페인 피게레스에 위치한 이 극장 미술관은 살바도르 달리가 직접 설계와 구성에 참여했다고 하는데,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아, 그래서 이토록 기이하고 자유로울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 외관부터 이미 비범하다. 초현실주의 그 자체. 알록달록한 색채, 거대한 달걀 조형물, 고딕과 팝의 중간 어디쯤 있는 혼란스러운 구조. 내부에 들어서면 더하다. 벽, 천장, 바닥 어디에도 규칙이 없고, 갑자기 마네킹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구두 모양의 소파가 중앙에 놓여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달리 특유의 날카로움이 숨어 있다. 그는 단지 기괴한 이미지를 나열한 게 아니라, 인간의 무의식과 욕망, 시간, 죽음 같은 깊은 주제를 독특하게 표현한 거다. 예를 들어 ‘기억의 지속(녹아내리는 시계)’처럼 상징성 강한 작품들은 그냥 ‘이상하다’고 넘기기엔 너무 많은 걸 담고 있다.
나는 달리의 세계를 처음엔 이해하려 애썼지만, 결국은 그냥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자’고 마음을 바꿨다. 그랬더니 오히려 더 많은 감정이 들어왔다. 달리는 질문을 던지는 화가다. 현실을 고정된 시각으로만 보지 말고, 가능성으로 보라고 말하는 사람.
피게레스는 바르셀로나에서 기차로 약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도시인데, 이 미술관 하나만으로도 갈 충분한 가치가 있다. 정말 현실을 잊고 싶은 날, 상상의 세계로 여행하고 싶은 사람에게 강력 추천한다.

진짜 예술은 감동보다 오래 남는다
모네의 평온, 세잔의 집중, 달리의 광기. 세 사람은 모두 다른 시대를 살았고, 전혀 다른 방식을 택했지만, 공통점은 하나 있다. 그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았고, 그것을 그림으로 남겼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그림들이 고스란히 남아 지금의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미술관은 단지 ‘작품이 걸린 공간’이 아니다. 그 공간 안에서 우리는 어떤 화가의 내면을 보고, 그 사람의 삶의 방식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내가 이번에 소개한 오랑주리, 에르미타주, 피게레스 극장 미술관은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특별한 곳들이다.
2025년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단순한 관광지만 돌지 말고, 하루 정도는 이런 미술관에 시간을 내보면 어떨까? 언어도 다르고 시대도 다른 화가들이, 지금의 내 삶에 조용히 말을 걸어올지도 모른다.
태그 : #오랑주리미술관 #에르미타주 #달리극장미술관 #유럽여행 #예술여행 #모네 #세잔 #달리
이런 자료를 참고 했어요.
[1] NAVER - 파리여행 일정 오랑주리미술관 후기 (https://blog.naver.com/gf_creator/223079965091)
[2] 네이버 블로그 - 프랑스 파리 여행 : 오랑주리 미술관과 오르셰 미술관 후기 (https://m.blog.naver.com/mbastudy/222847584909)
[3] 티스토리 - 프랑스 파리 3일차 - 오랑주리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 (https://lost-i.tistory.com/57)
[4] 티스토리 -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 사전 예약하는 방법(뮤지엄패스 사전예약) (https://happylifetoday.tistory.com/entry/%ED%8C%8C%EB%A6%AC-%EC%98%A4%EB%9E%91%EC%A3%BC%EB%A6%AC-%EB%AF%B8%EC%88%A0%EA%B4%80-%EC%82%AC%EC%A0%84-%EC%98%88%EC%95%BD%ED%95%98%EB%8A%94-%EB%B0%A9%EB%B2%95%EB%AE%A4%EC%A7%80%EC%97%84%ED%8C%A8%EC%8A%A4-%EC%82%AC%EC%A0%84%EC%98%88%EC%95%BD)